심각한 한국당 비대위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가운데)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18·19·20대 총선 공천이 보수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보수 정당의 한 중진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보수의 몰락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최근 몇 번의 총선 공천에서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만 공천한 결과 당내에 패거리 정치가 만연하게 됐고 초·재선 의원들은 정풍운동은커녕 ‘의원배지’ 한 번 더 달기 위해 이리저리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보수정당 내에선 공천 때마다 ‘학살’이 난무했다. 친이(친이명박)계가 당을 장악한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고, 19·20대 총선에서는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가 거꾸로 친이계를 ‘숙청’했다.
‘사천’으로 전락한 공천이 반복되면서 쓴소리를 내는 소장·개혁파들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20대 국회에선 미래연대(17대), 민본21(18대), 경제민주화실천모임(19대)의 뒤를 잇는 개혁파 모임이 없다. 민본21에서 활동했던 정태근 전 의원은 29일 통화에서 “새로운 인물과 정책 전환의 수원지 역할을 하는 것이 당내 개혁파인데, 개혁파들이 부재하니 비판적인 문제 제기 자체가 안 될뿐더러 근본적 위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제2, 제3의 박세일이 나와야”
보수진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히는 영국 보수당의 성공 요인은 보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 두뇌집단의 존재였다. 영국 보수당의 싱크탱크 정책연구센터는 대처리즘의 산파였다. 2005년 39세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당수에 오르면서 내놓은 ‘현대적인 온정적 보수주의’는 우파 싱크탱크 ‘정책교환’의 작품이었다. 미국에서도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 ‘미기업연구소’가 없었다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혁명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여의도연구원, 바른정치연구소와 같은 보수진영 내 싱크탱크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적잖다. 특히 여의도연구원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여연(여의도연구원)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불과하다”는 자조까지도 나온다. 한 보수정당 관계자는 “여의도연구원의 정책판단 보고서가 국회 기관들의 보고서나 기업체 내부보고서보다 평가가 낮았다”고 말했다. 보수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낼 이론가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선진화 담론을 주도한 고 박세일 전 원장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제대로 된 보수세력을 만들려면 가치부터 정해야 한다”며 “그 가치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토론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도 “새로운 담론과 노선을 만들기 위한 숙의와 토론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열한 내부토론을 통한 비전 재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도형·이우중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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