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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지친 몸을 다듬어 다시 세상으로…'활력 충전소'로 전환하다

입력 : 2017-11-19 14:00:00 수정 : 2017-11-19 15: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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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우리시대의 집 # ‘일본의 집, 1945년 이후의 건축과 생활’ 전시를 가다

지난 9월 어느날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 5개 건축사무소 소장들이 모였다. 평소에 친분이 있는 몇몇이 자주 모이던 터에, 마침 도쿄에서 열리는 볼 만한 건축전시회가 있다고 해서 함께 보러가기 위해서였다.

‘일본 주택 1945년 이후의 건축과 생활’이라는 전시인데, 표제 그대로 전후 일본의 주택을 총정리 하는 전시라고 들었다. 워낙 정리를 잘하고 포장을 잘하는 그들인지라 상당히 기대가 됐다.

열흘이나 계속될 추석 연휴 직전의 주말이라 공항은 무척 한산했다. 김포도 그랬고 도쿄 하네다도 그랬다. 지하철 검표기를 지나듯 출국·입국 절차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비행기를 내려서 전철을 한 번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천황이 산다는 도쿄 황궁 바로 뒤에 있는 국립 근대미술관이었다. 방금 비가 그친 하늘과 지은 지 좀 되어 보이는 건물이 똑같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안내되는 전시의 포스터는 무거워 보이는 전시 내용에 비해 가볍고 친근했다. 표를 사고 안내문을 받아들고 입장했다. QR코드를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한국어 가이드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전시의 배경에 대해서는 “개인이 소유하는 공간에 불과한 집은 공공건축과 달리, 일본적인 것을 지향하면서도 무언가 하나의 양식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고 복수의 양식을 복합화하여도 문제가 없다”는 설명과 함께 13개의 카테고리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일본적인 물건(Japaneseness), 프로토타입의 대량생산(Prototype and Mass-Production), 흙 같은 콘크리트(Earthy Concrete), 주택은 예술이다(A House is a Work of Art), 폐쇄에서 개방으로(From Closed to Open), 유희성(Play), 감각적인 공간(Sensorial), 마치야: 마을을 만드는 집(Machiya : Houses that Shape Cities), 틈새의 재정의(Redefining the Gap), 가벼움(Lightness), 탈시장경제(Unmarketable), 새로운 토착: 생활의 에콜로지(Vernacular: Ecology of Living), 가족을 비평한다(Family Critiques) 등.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사진은 일본 현대건축의 큰 틀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단게 겐조가 지은 자신의 집이었다. 젊은 시절의 단게 겐조는 처음 보았는데, 가족들과 비타민C 광고 사진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손으로 그린 당시의 도면이 붙어 있었고 전후 일본의 현대주택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30∼40대의 젊은 사람들이 건축가에게 주택 설계를 의뢰하면서 일본 현대건축이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이었다. 그런 의식이 사회에 반영되고 소비자와 공급자의 수준이 같이 올라간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하는 주택을 일종의 사치라 여겨온 우리는 그런 시절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관람객이 많이 있었다. 딱 봐도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일본에 인턴을 온 듯한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들 그리고 건축의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들도 무척 꼼꼼히 전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본의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관심은 상당하다고 들었다. 일례로 일본에는 일반인들이 모여 건축평면을 연구하는 동호회가 있어서, 심지어 자신들이 그린 평면 콘테스트까지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을 전공한 사람 말고 건축 평면도라는 개념을 알고, 그리면서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북적이는 전시장을 보며 이런 차이가 언제쯤 좁혀질까 궁금해졌다.

전시장 중앙에 실물 크기로 전시된 ‘사이토 조교수의 집’은 미술관 실내공간이라는 제약으로 건물의 남쪽 면과 거기서 이어지는 툇마루 거실, 식당, 응접실 내부 공간 위주로 제작되었다.
# 건축가의 시선에서 본 일본 현대주택의 발전사

13가지 계보 아래 56명의 건축가가 설계한 75개의 주택, 400여 개의 섬세한 모형들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집은 일대일 스케일의 모형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전시장 중앙에 실물 크기로 제작된 ‘사이토 조교수의 집’은 미술관 실내공간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건물의 남쪽 면과 거기서 이어지는 툇마루 거실, 식당, 응접실 내부 공간에 초점을 두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방마다 앉거나 서서 직접적인 공간 체험을 하고 있었다.

초창기 주택 중에 이쿠타 쓰토무의 ‘밤나무가 있는 집’(1956)은 일본식과 서양식이라는 두 라이프 스타일의 공존이 시도된 집이다. 일본식 침실이 오른쪽, 서양식 거실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고 이 두 공간이 욕실 앞 전실에 의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있다. 정원 쪽에 있는 테라스도 난간이 설치된 부분(서양식)과 그 이외의 부분(툇마루=일본식)이 통합되어 있다. 서양 현대건축을 받아들이며 또한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기 위한 건축가의 원초적인 고민이 엿보이는 집이다.

그밖에도 아틀리에 바우와우의 주거와 업무가 공존하는 주택이나 아즈마 다카미쓰의 탑의 집, 데즈카 건축연구소의 지붕 집 등 그간 잡지나 인터넷 웹진을 통해 접했던 다양한 주택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1910년대에 태어난 원로 건축가와 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건축가의 작업이 시대순이 아니라 테마별로 나란히 전시된 것도 신선했다.

요즘 한창 일본건축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구마 겐고나 소 후지모토의 주택은 선배들의 작업에 비해 역시 가볍다는 느낌을 주었다. 엄청나게 공들여 1대 10 스케일의 모형으로 만들어온 후지모토의 주택은 옷걸이와 슬리퍼까지 재현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놀라울 정도지만, 이렇게까지 샅샅이 외부에서 생활이 들여다보이는 주택이 과연 본질적인 안락함을 답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으로 다가왔다.

일본 현대건축이 세계 건축계에서 가지는 위상은 남다르다.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벌써 6팀 7명이나 된다. 역시 빠지지 않고 그들의 작업이 전시장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 이토 도요의 U하우스,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모리야마 하우스 등 그들의 대표작은 역시 압도적인 맛이 있었다.

다만 주제를 다양하게 나누다 보니 깔끔하게 칸막이 해놓고 일목요연하게 배치가 된 대신에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 보이지 않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이만큼 다양한 주택들이 있었다는 화려함은 전달되었지만, 전시의 흐름 자체는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논문을 쓰기 위한, 분류를 위한 분류처럼, 말끔하게 포장되고 시각적으로 깔끔하지만, 베어 물면 뭔 맛인지 의아해지는 애매한 경계의 일본 과자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쉬웠던 것은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일본 건축의 원동력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건축가와 세계적인 스케일의 건축물도 있겠지만, 도심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에서 활동하는 동네 건축가들이 만들어낸 동네 집들. 화려하거나 비싼 재료를 쓰지는 않았지만 부분부분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런 집들은 논외로 친 것 같았다.

그건 동네 건축가들이 잘 살아있고 그 건축가의 설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건축주와 시공자가 있으므로 가능한 집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을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그런 사회적인 역량에 대한 정리도 전시 내용으로 들어갔더라면 훨씬 입체적인 전시가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비단 일본 건축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13가지 계보 아래 56명의 건축가가 설계한 75개의 주택, 400여 개의 섬세한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토 도요의 ‘U자 집’ 등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현대건축가들의 작업도 소개되고 있다.
# 우리 시대의 집

70여 년간 쌓여온 현대주택의 역사를 경제적인 발전이나 산업적인 측면보다는 건축가의 시선에 중점을 두고 바라본 건축전을 보면서, 그렇게 건축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토양이 부러웠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가지가 풍성해지며 알찬 열매가 달린다.

몇 년 전 건축사협회에서 50주년 기념 단행본을 만들 때 한 자리에 끼어 ‘건축사지를 통해본 한국 주택 50년사’라는 꽤 많은 분량의 원고를 썼다. 어쩌다보니 거절하지 못하고 더럭 그 일을 받았는데, 엄살을 떠는 것이 아니라 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소개된 집을 한 채 한 채 들여다보는 일이 보통일은 아니었다. 물론 ‘덕분에’ 50년의 세월 동안 건축사지에 게재되었던 모든 주택을 하나씩 찬찬히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그동안 잡지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았던 주택작업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디자인의 완성도나 작가의 지명도에 좀더 기댄 측면이 있었다면, 협회지에 연대순으로 소개된 집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나름의 꿈들이 있었다. 하나씩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을 훌쩍 보내버리고 나서 코멘트를 달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거의 단행본 한 권 분량의 글이 되어 다시 양을 맞추기 위해 줄이느라 또 고생을 했다. 아무튼 선배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그들과 함께 둘러보는 뜻밖의 시간여행을 하게 된 것은 무척 감동적인 일이었다.

초창기인 60년대에는 근대건축의 어휘로 표현된 멋진 고급주택 위주의 집들이 주로 게재되었는데, 건축주는 대부분 기업가이고 삼대가 살며 고용인도 고려한 백여 평 이상의 집들이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설계의 밀도가 좀더 높은 작업들이 나타나는데, 특히 홍순인이 설계한 ‘서교동 C씨댁’의 경우는 당시의 건축가들의 고민을 알아볼 수 있는 집이고 공간적이 성취가 눈에 띄는 집이다. 이형의 좁은 대지를 최대한 활용한 레벨을 이용한 평면의 다양함이 돋보이는데, 내외부가 서로 넘나들면서 작은 공간들이 파고들어 공간을 풍요롭게 해준다. 이때부터 마당이 여러 군데로 나뉘어 공간을 품는 입체적인 구성이 나타나면서, 단지 현대건축의 주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생활이 바뀌고 기호가 바뀌고 유행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며 집은 계속 진화해왔다. 콘크리트와 철골의 개발과 보급은 ‘모던’한 현대건축의 형태를 만들었고, 모두가 꿈꾸는 ‘모던 리빙’을 실현케 해주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축은 우리의 생활 패턴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고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을까.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정보 공유로 인해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간극은 아주 좁아졌고, 이전에는 미래에 대한 투자 개념으로만 집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앞으로의 주택건축이 지향할 방향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만드는 집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모든 공간은 집에서 출발한다. 원래 태초에 인간이 두 발로 걷고 불을 다루게 되고 문화를 향유하며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사회라는 틀이 만들어질 때조차도 인간은 정치, 문화, 제사, 교육 등의 모든 행위를 바깥 들판에서 벌였다. 우리가 아는 캠퍼스라는 말의 어원도 라틴어로 들판을 뜻하는 ‘캄푸스’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승자를 일컫는 ‘챔피언’(Champion: 들판에서 싸우는 자를 뜻함)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내부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집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동물의 뼈대와 가죽, 혹은 나무나 동굴을 흉내 내어 사람이 들어가서 쉴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지친 몸을 다듬어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는 껍질을 만드는 행위로서의 집, 그것이 모든 공간의 시초이며 모든 공간의 끝일 것이다. 아무리 가족의 구성이 다변화 되고, 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의 힘이 불쑥불쑥 개입하고, 구축하는 재료가 한없이 다양해지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집의 본질이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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