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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 따라 웃음꽃 만개… 솜을 따고 情을 타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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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12 11:00:00 수정 : 2023-02-12 09: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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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 문익점’ 목화 명인 임채장

지리산 자락 아래 자리한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마치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한 약 8265㎡(2500평)의 넓은 목화밭이 눈에 띈다.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인데 이 목화밭의 주인은 까다로운 목화 농사를 놓지 못하고 직접 재배하고 목화솜을 수확해 이불을 만드는 일을 40년째 하고 있다. 함양의 문익점이라 불리는 국내 유일 목화 명인 임채장(73)씨가 주인공. 100여 년 전 방앗간 자리였던 작업장인 칠성면업사에서 목화솜을 타는 전통 방식의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하얀 눈처럼 내려앉은 목화솜에 누운 임채장 명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목화를 직접 재배해 전통방식으로 천연목화솜 이불을 제작하는 임 명인의 웃음에서 목화솜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1㎏짜리 석 장으로 이불 두 채 내일 솜 타서 보내겠습니다.” 임 명인이 목화솜을 따는 사이에도 포근한 목화솜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문 전화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몸에 좋고 따뜻한 천연 목화솜은 구하기 힘든 만큼 한번 써 본 사람들은 계속 찾아주세요. 고마운 일이죠.”

목화솜은 열매가 터지며 목화씨와 함께 나오는데 첫서리가 내리기 전인 10월쯤부터 다음 해 2월 말까지 수확한다. 먼저 일일이 손으로 솜을 하나씩 따서 일주일 동안 건조한 뒤 60년 세월을 같이한 보물 1호인 구식 조면기(繰綿機)를 통해 솜과 씨를 분리한다. 이어서 솜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타면기(打綿機)를 통해 1㎏ 무게의 사각형 솜 형태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내피와 외피를 입히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솜이불이 된다. 목화솜 한 장을 얻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가고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의 넓은 목화밭에서 임채장 명인이 목화솜을 수확하고 있다.
100여년 전 방앗간 자리였던 임채장 명인의 작업장인 ‘칠성면업사’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솜을 평평하게 만들어주는 ‘타면기’를 통해 1㎏ 무게의 사각형 목화솜이 나오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어느 동네에서든 흔히 볼 수 있었던 목화밭은 1980년대 들어서며 거의 사라졌다. 목화솜 이불 한 채 팔아도 농사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시간을 생각하면 별로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임 명인이 목화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건 식물성 제품인 목화솜은 화학제품이나 동물성 제품보다 사람에게 가장 안전해서다. 천연 목화솜은 구하기 힘든 만큼 아토피와 피부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이다. 우리 전통 방식으로 목화 농사를 이어 간다는 사명감과 자부심도 목화 농사를 놓지 못하는 큰 이유이다. 다행히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아들 임성훈(45)씨가 가업을 이어 가 준다니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사각형 목화솜에 내피를 입히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솜이불이 된다.
목화밭에 눈처럼 하얗게 핀 목화솜.
임채장 명인이 60년 세월을 같이한 보물 1호 구식 ‘조면기’를 통해 솜과 씨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 명인은 20년째 함양군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들에게 따뜻한 이불을 제공하는 봉사도 하고 있다. “제가 만든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목화솜 이불을 덮고 지리산의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필요한 분이 계시면 계속해야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하얀 눈송이처럼 활짝 핀 목화솜을 닮았다.


함양=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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