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총 5명의 아버지가 나오는데, 초반에 제일 개차반이 심동민이었어요. 최악이었죠. 최근 비슷한 역할을 많이 연기해서 다른 배역을 하고 싶었는데, 변영주 감독님이 ‘심동민은 가해자이지만 가장 큰 피해자’라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드라마를 찍다 보니 심동민이 가장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배역이더라고요.”
지난 2일 서울 아트문갤러리에서 만난 배우 조재윤은 MBC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 아웃(Black Out)’에서 자신이 연기한 심동민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드라마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전과자가 된 고정우가 10년 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범죄 스릴러다. 심동민은 고정우에게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심보영의 아버지로, 매일 술에 절어 딸과 아내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그런 그가 딸이 죽은 뒤,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식이나 자기합리화 아니냐”는 질문에 조재윤은 “딸은 사랑한 건 맞는데, 그 방법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고창수(정우 아버지), 현구탁(수오·건오 아버지), 양흥수(병무 아버지), 신추호(민수 아버지)는 모두 심동민보다 잘 살아요. 특히 현구탁은 이재희(심동민 아내)와 바람을 피우지만, 5명 아빠 중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죠. 형들에 대한 질투, 피해의식 등 때문에 심동민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인 행동을 해요. 그리고 술이 깨면 미안하다고 하죠. 철저하게 자기를 방어하고 자기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보영이가 죽으면서 가족을 사랑했다는 걸 깨닫고 딸의 복수로 살인까지 합니다.”
조재윤은 심동민이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는 중에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말한 대사를 언급하며 “보영이를 위해 복수했던 것이고 그 한을 대신 풀어준 것”이라며 “보영이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대사”라고 설명했다.
2003년 영화 ‘영어완전정복’으로 매체 연기를 시작한 조재윤은 활발하고 장난기 넘치는 성격으로 그에 맞는 역할을 자주 맡았다. 하지만 ‘환혼’ ‘밤에 피는 꽃’ ‘7인의 부활’ 등 최근엔 악인을 연달아 연기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심동민까지 맡으면 ‘조재윤=악인’이라는 고정관념에 힘이 더해질까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오열하며 우는 장면을 해보고 싶었어요. 제 안에 그런 감정이 있는데, 그걸 터트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많았죠. 악인이지만 딸을 사랑하면서 오열했던 심동민을 연기하면서 그 대안이 됐어요. 변영주 감독님의 조언과 제가 가지고 있었던, 하고 싶었던 욕망이 겹치면서 지금의 심동민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조재윤이 뽑은 최악의 악인은 누굴까. 그는 ‘현구탁’을 꼽았다.
“현구탁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했습니다. 제(심동민)가 비록 심보영에게 손찌검을 하지만,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배윤식)이 ‘말은 권력과 힘이야’라고 말한 것처럼 현구탁은 말과 상황으로 마을 사람들을 현혹하죠.”
현구탁을 연기한 권해효에 대해선 “시를 자주 읊고 우쿨렐레도 연주하는 멋진 형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화가 날 정도였다”며 “평소에도 자주 만나서 식사도 하고 전주영화제에도 같이 간 친한 형이지만, 연기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재윤은 최근 영화 ‘4월의 불꽃’ 촬영을 마쳤다. 내년 초에는 장진 감독이 연출하는 연극에 출연한다. 이번 변영주 감독과 인연으로 그가 연출하는 드라마에 주·조연 등으로 함께할 예정이다. 배우 정태우와 함께 여행 유튜브 채널 ‘쪼기어때’도 최근 시작했다.
“쉴 틈이 없어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도 한 번 받아보고 싶어요. ‘악역 조재윤’ ‘나쁜 놈 조재윤’으로 불렸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보영이 아버지’가 생겨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 행복이 상으로 이어지면 더욱 좋겠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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