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승강장까지 이동 도움 서비스
관련 매뉴얼 개정하며 항목 없애
“혼자 열차 타고 서울 다녔었는데…”
기존 이용자들 이동권 퇴보 지적
코레일 측 “인력 부담된 탓” 해명
소아마비로 혼자서 걷기가 어려운 68세 여성 A씨는 지난달 18일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뒤 딸 부부가 데리러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원래 서울역을 비롯한 모든 KTX역에는 A씨와 같은 교통약자가 택시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직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이 도움을 주는 ‘교통약자 배려서비스’가 있었다. 하지만 교통약자 지원 서비스 구간이 ‘역 내 이동시설’로 바뀌면서 보호자가 없으면 ‘역 밖’에 있는 택시 승강장까지 가기가 어려워졌다. A씨의 딸 고안나(32)씨는 “사실상 서비스가 없어진 것과 같다”며 “장애인 이동권이 개선되기는커녕 퇴보해 실망스럽다”고 토로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장애인과 노약자 등 교통약자의 열차 이용을 돕는 교통약자 배려서비스 범위를 축소하면서 이들의 이동권이 제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객들은 보호자가 없으면 교통약자의 철도 이용이 어려워져 생활반경이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코레일은 8월 교통약자 도우미 서비스 관련 여객서비스 매뉴얼을 개정하면서 ‘버스 또는 택시 타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항목을 삭제했다. 대신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을 참조 조항으로 넣어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매뉴얼을 조정했다.
관련법은 역사에서 교통약자를 위해 △승·하차 △역사 내 이동 △이동편의시설 이용 등을 지원토록 규정한다. 이동편의시설은 휠체어 리프트나 승강기, 에스컬레이터 등을 의미해 매뉴얼 개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코레일 역사 중 출입구와 택시·버스 승강장이 가까운 경우엔 소속장 재량으로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도 부연했다.
그러나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들은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애초에 혼자 걷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비스인데 역사 밖 교통수단으로까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목적지로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는 주요 교통수단인 철도 이용이 제한된 탓에 경제 활동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고씨는 “어머니가 서울에서 통역사로 일할 때, 4년 전 강의를 하러 오갈 때도 KTX를 타고 혼자 다녔다”며 “일이 있는 사람들에겐 밥줄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교통약자 지원 서비스의 이용 대상은 해마다 수만명에 달한다.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2021년 2만6400명, 2022년 3만3430명, 2023년 4만437명으로 매년 늘어나 지난해엔 하루 평균 110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서울역과 용산역, 부산역 등 주요 역에서는 각각 6717명, 3888명, 2550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코레일 측은 ‘과도한 서비스 요구에 대한 업무 부담을 줄였다’고 강조하며 인력 부담과 업무 과중 탓에 불가피하게 서비스를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개정 전 동행자가 없는 서비스 이용객 중 일부가 화장실 이용 후 처리나 마트 동행, 역사 밖의 원거리 환승지로의 안내 요구 등 과도한 요청을 하며 다른 이용객 서비스 제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만든 서비스를 행정편의주의 시각에서 없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한진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교통수단을 비롯한 사회 시스템이 비장애인 위주라는 부분에 경각심과 부끄러움을 가져야 하는데 경제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 관점에서 그나마 있던 서비스까지 축소하는 건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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