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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누구편인지 묻는 내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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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05 23:17:46 수정 : 2025-03-05 2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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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심판 선고 후 분열 아닌 국가 미래 해법 찾아야

“탄찬(탄핵 찬성)입니까, 탄반(탄핵 반대)입니까.”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편 가르기를 하는 폭력적인 질문이 점차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 되고 있다. 미국의 내전 전문가인 바버라 월터는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 출신인가”라고 묻기 시작하는 것을 내전의 서막을 알리는 첫 질문이라고 했다.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 한 여성은 월터와의 인터뷰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를 공개적으로 묻기 시작한 뒤 내전이 격화됐다고 답했다.

조병욱 정치부 차장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진 상황을 가정해 만든 앨릭스 갈런드 감독의 영화 ‘시빌워’에서도 내전에 참가 중인 한 군인은 자신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장면을 본 언론인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미국인이냐”고. 자신과 다른 지역, 인종의 이방인에게는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최근 이 책과 영화를 보고 슬프게도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됐다.

한국에서 무슨 내전을 걱정하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리에선 이미 심리적 내전사태가 벌어진 지 오래다. 서울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시위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희망에서 우러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정부나 다른 시민들이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통해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이런 시위가 실패로 돌아가면 희망이 사라지고 폭력의 구실이 생긴다는 것이다.

곧 있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조차 두렵다. 어떤 결론이든 한 진영은 승복하지 않을 태세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선고 직후 흥분한 한 지지자는 경찰 버스를 탈취해 난동을 부렸고, 100㎏에 육박하는 대형 스피커가 추락해 집회 참가자가 숨지기도 했다.

내전은 갑자기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불신과 분열이 서서히 자라나 폭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현대 내전의 시작점은 정치적 극단주의와 사회적 파벌화에 있다. 이를 대입해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우려를 넘어 두려움이 느껴지는 단계다. 여야 갈등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국민을 진영으로 나누고 분열시키고 있다.

극단적 상황의 촉매제로 내전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를 지목했다. 정치권은 이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조장한다. 지난 200년간 전 세계에서 벌어진 내전 484건을 분석한 미 컬럼비아대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비머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체성 기반의 정당이 등장한 국가는 내전 발발 가능성이 두 배로 높아지고, 반민주·반독재 상태인 ‘아노크라시’ 국가는 무려 서른 배나 더 불안정해질 수 있다.

물론 디스토피아만 예고된 것은 아니다.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민주주의의 심화와 강화를 말한다. 2014년 세계은행 연구를 보면 내전을 피한 국가들은 공통점으로 ‘거버넌스의 질 향상’이 꼽혔다. 시민의 참여, 공정한 선거, 행정부 권한 제한 등이 핵심 요소다.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을 넘어 국가와 미래를 위해 곧 있을 헌법재판소 결과에 승복하자고 해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전을 막는 방법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데 있다.


조병욱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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