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환율이 떨어지겠네요.”
지난 5일 취재차 만난 자동차 업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직후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핵심 부품을 수입해 써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환율은 제품의 단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이제 다소나마 완화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국내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더해 미국발 관세전쟁 본격화에 따른 공급망 불확실성이라는 큰 파고까지 마주하고 있다. 부품 하나하나가 촘촘하게 얽힌 자동차 업계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에 한국산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차·기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차가 올해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 중 전기차를 제외한 약 47만대에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약 5조1450억원 규모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아까지 합하면 총 9조원 규모의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일단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와 소비자 신뢰를 지키기로 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관세 여파로 인한 소비자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6월2일까지 판매 중인 모든 차량의 권장소비자가격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 내 생산량을 연 120만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부품 및 배터리 공급망을 현지화하는 중장기 대응 전략도 세운 상태다.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도요타는 당분간 미국 내 재고 활용과 원가 절감을 통해 부담을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BMW는 멕시코산 차량에 부과되는 관세를 5월1일까지 자사가 부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가격 인상이나 수출 중단으로 대응하는 기업들도 있다. 페라리는 일부 모델 가격을 최대 10% 인상했고, 재규어랜드로버는 일단 미국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스텔란티스는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며 공급망 조정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관세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현재 ‘버티기’에 들어간 기업들도 결국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JP모건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미국 내 자동차 평균 가격이 약 11%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 상승은 결국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이 차량 구입을 포기하거나 구매 시기를 늦추며 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무역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관세 조치가 계속될 경우 공급망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전 세계에 걸쳐 공급망이 얽혀 있는 데다 생산시설의 이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등의 생산 기지 재조정과 함께 국내 산업 공동화까지 막아야 하는 모순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산업의 격변기에서 전동화 차량,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등 미래차 분야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기를 쓰고 관세 장벽을 쳐 보호하려고 하는 자국의 자동차 기업과 경쟁 기업 중 누가 미래차 패권을 쥘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마도 트럼프라는 글로벌 돌발 변수의 출현이 변화를 예상보다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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