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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다시, 모두를 위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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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0 23:45:26 수정 : 2025-04-10 23: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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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으로 둔갑된 탄소배출
개도국에 치명적 기후재난 안겨
韓,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새정부, 무너진 원칙 바로 세워야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은 0층부터 지하 333층까지 수직 공간(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각 층에는 2명씩 배정되고, 정해진 기간까지 살아남으면 된다. 생존의 최소 요건은 음식. 각 층에는 도넛 구멍처럼 한가운데 뚫린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그 사이로 0층에서 차려낸 푸짐하고 호화로운 음식이 한 상 가득 실려 1층으로 내려온다. 정해진 시간 동안 1층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은 2층으로 내려가고, 2층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 3층, 4층, 5층… 으로 계속 내려간다. 48층만 이르러도 음식이라기보다는 음식물 쓰레기에 가까운 잔반만 남고, 50층 밑으로는 그마저도 구경하기 어렵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모두 최소한의 음식만 적당히 나눠 갖기로 합의한다면, 다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존이 목적인 수직 플랫폼에서 이런 고고한 연대의식이 발휘될 리 없다. 꼭대기에 있는 자는 꼭대기에 있을 때 필요 이상의 몫을 위장으로 욱여넣고, 바닥에 있는 자는 살인 아니면 아사의 극한에 내몰린다.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층수에 따라 접근 가능한 자원의 양이 결정되고, 어떤 이기심과 폭력도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허용되는 세상. 플랫폼은 원칙과 정의가 실종되고 오직 개인의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 사회의 메타포다.

‘더 플랫폼’은 표면적으로 자본주의를 겨냥하는 것 같지만 체제를 넘어 인간의 이기적 본능에 관한 일종의 반성문이다(라고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지만, 그중 특히 이기적인 행위가 사회?경제적 성공으로 간주될 때 배려, 양보, 공존은 설 자리를 잃는다. 기후?환경에선 익숙한 이야기다.

이번 세기말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은 정해져 있다. 이를 탄소예산이라고 한다. 국제과학자그룹인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에 따르면 1850년 이후 우리에겐 2조8946억t의 탄소예산이 있었다. 이 가운데 91.8%를 2024년까지 썼고, 이제 2382억t 남았다. 연간 배출량을 고려하면 6년 뒤엔 다 소진될 전망이다. 20세기에 나고 자란 이기적인 대식가들이 탄소예산을 먹어치운 탓에 21세기 인류는 쫄쫄 굶어야 할 판이다. 탄소 배출이 경제성장으로 둔갑되면서 빚어진 세대 간 불평등이다.

플랫폼 구조는 국가 간에도 대입할 수 있다. 상층에 사는 선진국이 탄소 예산을 먹어치운 결과 벌어지는 기후 재난은 개도국에 더 치명적이다. 국제재난데이터베이스(IDD)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사우스(개도국)는 글로벌 노스(선진국)보다 10배 더 많은 홍수를 경험했는데 피해 인구는 900배나 더 많았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개도국 기후재원도 마련할 겸 자발적 탄소시장이 만들어졌지만, 아프리카 국가에선 “토지 수탈이 탄소 수탈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 외국 기업이 아프리카 토지를 헐값에 사들여 자원을 개발했듯, 산림 보호나 조림 프로젝트를 앞세워 아프리카 땅을 확보해 저가의 탄소 크레디트를 ‘줍줍’한다는 이야기다.

“변화는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아요.” 더 플랫폼의 주인공은 생존 정글에서도 연대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메시지를 플랫폼 운영진에 보내기로 한다. 가장 비싼 음식을 손도 대지 않고 다시 0층으로 올려보냄으로써 이곳에도 ‘공존의 원칙’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시도다.

두 달 뒤 꾸려질 새 정부의 중요한 과제는 무너진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기후대응분야에선 당장 정부조직 개편과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수립해야 한다. 지난 3년 환경부는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와 댐 건설 추진 등에 있어 무능을 드러냈다. 부처가 고수해야 할 가치보다 정부 내 수직질서를 맹종한 결과다. 2035 NDC는 후세대에 감축 책임을 미룬 2030 NDC의 과오를 수습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2031년 이후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 것’이라며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현세대의 안위만 좇는 이기적 결정 대신 미래 세대의 권리와 생존을 고려할 정부와 정책이 절실하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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