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새 협상서 디테일 조율 전망
“통 큰 투자 제안하되 기본 뼈대 잡고
지급 기한 등은 추후 연기 협상 필요”
정부, 조선 외 반도체·LNG 구매 등
모든 선택지 다 열어두고 대책 마련
미국 현지시간으로 상호관세가 8월1일부터 부과되는 만큼 현지에서 31일 협상이 타결된다면 우리 시간으로 1일 오전쯤 협상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미국과 관세 협상 현황을 지켜보는 많은 전문가는 “합의 자체는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디테일한 합의는 다음달부터 다시 시작될 새로운 협상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은 현재는 기술과 실력이 아닌 “외교력과 협상력으로 승부할 때”라고 강조했다.

30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날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조현 외교부 장관 등 관계부처 고위급뿐 아니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정 회장까지 워싱턴에 출동하며 정재계 주요 인사가 대미 관세 협상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무역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국가에 적용되는 관세로 “15∼20% 두 숫자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관세를 제외한 국별관세인지, 전체 상호관세인지 트럼프 대통령 의중을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최소한 일본과 유럽연합(EU)과 같은 15%에는 미국과 합의해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어쨌는 우리는 협상 타결이 안 되면 8월1일부터 상호관세 25% 부과가 확실해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해석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강조된 조선업 외에도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산업 협력과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입, 알래스카 가스 개발 및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확대 등 가능한 선택지는 다 열어뒀다. 정부는 미국이 관심을 가질 만한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입 등을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한국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대부분의 EU 국가들이 소속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국방비를 2035년까지 GDP의 5% 수준으로 증액하는 방안에 미국과 합의한 바 있다. 또 EU는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기로 하고 상호관세를 기존 30%에서 15%로 낮췄다.

허정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미국 입장에서 이 협상이 왜 시작됐고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 보라”며 “이 사달이 난 이유는 미국이 입는 손해를 줄이겠다는 목적이고, 한국은 일본과 대미 무역흑자가 비슷한 나라”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은 685억달러를 벌어들였고 우리나라는 660억달러를 벌어 각각 세계 7·8위에 올랐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일본의 절반도 안 된다고 주장해도 미국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허 교수는 “조선 협력이 유용한 카드지만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을 생각하면 LNG 등 미국산 상품 구매 확대가 더 적절한 접근 같다”고 말했다.
물론 조선 협력도 중요하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미국과 상선 공동 발주·건조는 물론이고 미국 내 조선소 운영,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수주, 상호 기술 교류 및 인프라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며 “이번 관세 협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업무 방식을 볼 때 당장, 적어도 임기 4년 내 성과를 증명할 ‘현금’이 필요하지, 명분 좋은 ‘어음’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총평이다. 허 교수는 “현재는 ‘우리가 이 기술도 있고, 이것도 할 줄 안다’고 얘기하기보다 ‘이만큼 판을 키울게’라고 구성할 단계”라며 협상력 발휘를 당부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일본, EU 등이 큰 규모 투자를 약속했는데, 현재 이 숫자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협상 결과를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였고, EU의 합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김 단장은 “약속하되 문서화를 미루고 추후 작업으로 구체화하자는 방식으로 합의해야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금”이라며 “우리나라도 ‘통큰’ 금액을 제안하되, EU·일본처럼 뼈대만 잡고 지급 기한 등 디테일은 추후로 미루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전략이 받아들여지려면 여야가 국익을 위해 관세 협상 내용을 정치적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협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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