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타워] 콜라병이 된 ‘국민주권’

관련이슈 세계타워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9-17 23:42:32 수정 : 2025-09-17 23:42:31
장혜진 사회부 차장

인쇄 메일 url 공유 - +

선출 권력의 사법부 제어 시도… 헌정질서 균열 우려

어느 날 부시맨 마을의 하늘에서 콜라병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물건을 절굿공이·악기·무늬 찍개로 쓰며 각자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남용되고 있는 ‘국민주권’의 쓰임은 그 콜라병을 닮았다. 헌법이 뜻한 본래 맥락은 흐려지고, 각자가 원하는 용도에 맞춰 뜻을 덧씌운다.

“현실은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게 아니라 오직 마음속에 있다. 당이 진실이라 주장하면 그게 바로 진실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대사처럼, 국민주권의 정의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뒤섞이고 있다. 한 젊은 법조인은 “요즘 뉴스를 보면 헌법 교과서에서 배운 ‘국민’이 이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다”고 했다.

장혜진 사회부 차장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민주권을 앞세워 사법부를 선출권력 아래 두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정청래 대표는 15일 대법원장 탄핵을 시사하며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한가”라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둘러싼 위헌성 논란에 “국민주권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권력, 간접 선출권력”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공세에 대해 “국민주권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다”며 호응했다. 집권여당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요즘 ‘나는 국민도 아닌가’ 하는 박탈감을 호소한다.

국민주권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뜻하며,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임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핵심원리다. 그러나 다수의 선택이 곧 ‘국민 전체의 단일한 의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서로 같을 수 없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주권을 ‘하나의 궁극적 의지’로 상정하는 순간 다원성은 억압되고 자유로운 정치 행위는 왜소해진다. 헌법학자 허영 명예교수는 “국민은 다양한 개성과 이해관계를 지닌 무수한 인간의 집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관념적 크기일 뿐”이라고 해설했다.

국민주권은 모든 권력을 국민 앞에 억제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원리다. 우리 헌법은 권력의 서열을 그은 것이 아니라 기능을 나눠 서로 견제하게 했다. 입법권은 국회에(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제66조 제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제101조 제1항) 속하도록 했다. 다수결은 민주적 절차일 뿐 민주주의 전부가 아니다. 다수가 늘 옳은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헌법은 입법·행정의 ‘힘’과 사법의 ‘제동’을 함께 엮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았기에 다수의 압력으로부터 헌법상 독립된 지위에서 국민, 특히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도록 설계됐다. 또한 공개재판·이유설시·판결서 공개·상소제도·법관 징계·탄핵 등 책임·통제장치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국민주권은 권력의 주인을 정한 출발점이지 권력기관 간 주종관계를 정당화하는 토대가 아니다. 사법부를 선출권력의 위계 아래로 재배치하려는 시도는 겉으로는 국민주권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다수결로 정당화된 최고 권력의 자기증폭으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의지’를 독점적으로 대리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국민주권은 콜라병처럼 무엇으로도 변하는 도구가 된다.

영화 부시맨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세상의 가장자리에 도착했다고 믿으며 콜라병을 절벽 아래로 던진다. 낯선 물건 하나가 영화 속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렸듯이, 국민주권의 남용은 헌정질서에 균열을 불러올 수 있다.


오피니언

포토

손예진 'BIFF 여신'
  • 손예진 'BIFF 여신'
  • 아이들 슈화 '반가운 손인사'
  • 신예은 '매력적인 손하트'
  • 김다미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