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가 없는 미래기술 개척 필요
정부, 규제 유연화 등 제도 혁신
대전환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바야흐로 기술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기술지정학(Geo-Technology)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갈 길은 명확하다. 기술강국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기술 우위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기술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과거 추격자(Fast-Follower)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선도자(First-Mover) 반열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기업의 공로가 크다. 정부와 대학, 연구기관의 기여도 있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선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기업은 추격자 시대에 성공한 여러 경험을 갖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헝그리 정신’으로 아주 잘했고 성공했다. 그러나 선도자 시대에는 추격자 시대의 성공방식이 오히려 혁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다. 선례가 없는 미래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근로 환경 변화,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이공계 두뇌의 의대 쏠림 등 환경도 녹록지 않다. 이제 과거의 성공방식에 얽매이는 기업은 결국 미래를 잃을 것이다. 진통이 있더라고 과감히 변해야 한다. 선도형 기술개발 전략과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 선도자가 된 우리 기업은 지속 성장을 위한 신기술이 필요하다. 신기술 개발은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할 수 있고 탐색해야 하는 기술의 조합도 많다. 이 과정은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반하고 긴 시간을 소요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 혼자서 할 수도 있겠지만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즉 진정한 산학연 협력과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 기업 간 협업이다.
산학연 협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대학은 작은 예산으로 다양한 선행연구를 해서 의미 있는 기술을 빨리 탐색한다는 측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다만 산학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는 특허출원이 사실상 이익이 없기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특허는 계륵(鷄肋) 신세로 전락하고, 기업은 이 특허 유지에 막대한 비용을 소진한다. 이 특허 중에 양산에 기여한 것을 가려 해당 연구자에게 의미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그들은 밤을 새워 연구하여 최고의 특허를 제공할 것이다. 기업은 많은 계륵 특허보다는 똘똘한 실용특허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대학 등의 연구기관은 다양한 선행연구를 통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가진 특허기술을 평가하여 제대로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해 주면 연구자는 보다 고도화되고 실용성이 높은 미래기술을 앞다투어 개발할 것이다.
첨단기술 기반 벤처 창업은 향후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것이다. 첨단 벤처기업은 상장을 통해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거나 대기업에 M&A되어 미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여러 지원정책이 있겠지만 규제 유연화가 시급하다. 일례로, 첨단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고용 및 근로시간 규제를 유예하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벤처기업의 M&A 시 공정한 기술가치 평가를 위해 국외 전문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IP 공시제도를 도입해 기술 투자와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만 기업의 민감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가급적 국내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선도자가 된 기업은 진정한 산학연 협력과 첨단 벤처기업의 M&A를 통해 인재 확보와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더 큰 이익으로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 생태계와 문화를 조속히 안착시켜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다. 정부와 국회는 단기적 예산 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제도 혁신을 꼭 챙겨야 한다. 이번 대전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담보할 수 없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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