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과 접촉해 신상정보 파악
자금수거책 유인해 직접 잡기도
검거된 주범 송환 지연되자 탄원

지난 17일 오후 4시.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이런 소식이 올라왔다. 경찰청을 다녀온 이미영(53·가명)씨가 캄보디아 로맨스스캠 사기단 송환 계획을 전하자 김모(53)씨가 “64명 중엔 ‘그 놈’이 없네요”라며 지역별 송환 명단을 정리해 올렸다.
이들이 찾는 이는 ‘로맨스스캠' 사기단의 한국인 총책 강모(31)·안모(29) 부부다. 피해자 102명, 추정 피해금액 120억원. 캄보디아에 둥지를 튼 사기단 중 최대 규모다.
지난해 7월부터 1년 넘게 이들을 쫓는 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은 전국 피해자 30명으로 구성된 ‘추적자 모임’. 추적자 대표 이미영씨 역시 피해자다. 지난해 5월 부산에서 스쿠버 교육원을 운영한다던 남성에게 속아 2억원을 잃었다. 이후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 하겠다”며 블로그에 피해 과정을 공개했고, 이 글을 본 이들이 하나둘 연락해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씨는 “피해를 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대신 강씨 부부를 쫓는 딸도 있다”면서 “전국 곳곳에서 강씨 부부 관련 정보를 발굴해 공유하고, 경찰에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추적자들은 경찰 뿐 아니라 언론과 정치인 등에도 단독으로 발굴한 관련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피해 금액은 최소 200만 원에서 최대 8억8000만 원까지 다양하다. 추적자들은 강씨 부부를 잡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사기단 조직원에게 접근해 신상과 조직 구조를 파악했다. 공범 재판을 참관하거나 잠복까지 했다. 이씨는 “우리가 직접 유인작전을 펼쳐 자금수거책을 붙잡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움을 주던 조직원 중 하나인 ‘차 실장’ 최모(54)씨는 지난 6월 숨졌다.
강씨 부부는 올해 초 캄보디아 경찰에 체포됐지만 9개월째 송환은 지연 중이다. 이들 부부는 현지 관계자에게 4만 달러를 건네고 풀려난 뒤 성형수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 적색수배 중에도 한국대사관을 찾아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다. 이에 추적자들은 대통령실·외교부·법무부 등에 수 차례 탄원서를 내며 “정부가 송환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올 초까지 로맨스스캠을 저지른 혐의(범죄단체조직죄 등)로 강씨 부부를 포함해 83명을 입건했다. 현재까지 56명을 검거해 이 중 36명을 구속, 20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나머지 27명은 미검 상태로 인터폴 적색수배 등이 내려져 있다. 경찰은 범죄수익 자금 처분을 차단하는 ‘은색수배(Blue Notice)’를 추가 발령하는 등 이들을 계속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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