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이 스스로 쓸 수 없는 돈, 묶여 있는 자산을 일컬어 ‘치매 머니’라고 한다. 이 용어는 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랐던 일본에서 2010년대에 처음 사용됐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치매 고령자의 통장을 사망 후 확인해 보니 약 1억1000만원이 예치된 게 알려져 큰 화제가 됐다. 치매 부모의 자산이 동결돼 자녀들이 간병비를 대다 파산한 사례도 나왔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치매 머니 규모는 123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치매 머니 탓에 돈이 돌지 않아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전수조사 결과,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 124만명이 보유한 자산은 154조원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6.4%에 해당하는 규모다. 치매 환자 가운데 약 76만명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 규모가 1인당 평균 2억원이었다. 급속한 고령화로 2050년엔 치매 머니가 488조원에 달해 GDP의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치매 환자의 자산이 동결되면 소비와 투자로 순환되지 않아 사회·경제적으로도 손해다.
최근 치매 노인이 사기와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뉴스가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치매 환자의 손자 행세를 하며 1억4000여만원을 빼돌린 남성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몇 해 전 수원에선 자기가 돌보던 노인이 치매에 걸리자 은행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6년간 13억여원을 인출해 빼돌린 간병인이 구속됐다. 치매 머니가 가족들 간 다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서 80대 치매 어머니를 모시던 60대 아들이 형제들 몰래 10억원가량의 재산을 빼돌려 처벌받았다.
우리는 막대한 치매 머니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부실하다. 치매 발병 전 건강할 때 후견인을 정해두는 임의 후견제도는 절차가 복잡하고, 후견인과 후견 감독인을 따로 선임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든다. 공공후견제도가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만 이용할 수 있다. 치매 머니가 당사자 어르신의 돌봄은 물론 경제 선순환에도 기여할 방안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물론 정신이 온전할 때 가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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