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관련자 44명 입건 불구 처벌 ‘0명’
전담 수사 인력은 수사관 포함 9명뿐
유족들 뒤늦은 항철위 압수수색 분통
정부 “절차에 따라 조사 진행 중” 말뿐
유족들 “잊혀지고 있다는 배신감 커져”
지역 사회 무관심에 또 한번 상처받아
“국가는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파”
지난 1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대합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2024년 12월29일) 발생 1주기를 앞둔 무안국제공항에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고 이후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공항 한쪽에 설치된 유가족 셸터 41동과 공항 안팎에 걸린 현수막은 참사가 아직 과거형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행객의 발길이 뚝 끊긴 공항의 현실을 반영하듯 유가족들의 시간도 사고 당일에 멈춰 있는 듯했다.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공항을 떠나지 못한 채 꼬박 1년을 버텨왔다. 가족 5명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오모(56)씨는 “그동안 괜찮냐는 안부 전화에 늘 괜찮다고 답하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고 눈물을 삼켰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는 “절차에 따라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게 사고 원인 조사는 아직 신뢰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다. 유족들은 “시간은 흘렀지만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진실은 멈춰 서 있다”며 삭발 투혼과 농성으로 버티고 있었다.
◆떠나 보내지 못하는 가족들… 유가족의 ‘고립’
유가족의 고통은 상실에 그치지 않고 관계의 단절로 이어져 또 다른 상처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이 옅어지기는커녕 “잊혀지고 있다는 배신감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감정이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유가족들은 지난 1년 동안 몸으로 겪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공항 바닥에서 잠을 잡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곳 현장을 찾은 이들이 “그런 줄 몰랐다”고 말할 때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실감한다고 토로했다. 가족 5명이 살던 집은 사람이 끊긴 ‘빈집’이 됐고, 그 공백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분노보다도 배신감이었다. 경찰 수사, 국토교통부 대응,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조사까지 모든 과정에서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왜 설명하지 않느냐”는 의문만 남았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되레 “죽음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으면 같은 사고는 또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도 보상이나 위로가 아니라 진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지역 사회에서는 “왜 아직도 시위를 하느냐”, “공항은 점검 중”이라는 일부 반응이 나오며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달 초 항철위가 예고했던 조사 중간 결과 공청회는 유가족들의 강한 반발 끝에 연기됐다. 유가족들은 삭발과 집회, 대통령실 앞 농성까지 이어가며 “공청회는 이미 결론이 정해진 각본”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항에 혼자 있던 오씨는 “정부에는 ‘유가족 대응 매뉴얼 1단계, 2단계’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우리는 국민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민원인’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진정한 추모는 분명하다. ‘진상 규명’을 통한 ‘재발 방지’이다. 오씨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남는 것은 상처뿐”이라며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진실을 외면한 채 추모를 말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미궁에 빠진 사고 원인… 겉도는 재발 방지책’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유가족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남경찰청이 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 44명을 입건했지만 기소되거나 처벌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유가족들은 이를 두고 “수사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남경찰청의 사고 전담 수사 인력은 수사관 4명, 지원 인력을 포함해도 9명 수준이다. 이 인원으로 항공기 사고 전반은 물론 공항 관제 시스템, 공항 시설과 설계, 안전 관리 체계까지 포괄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유가족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경찰은 ‘큰 건은 다 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왜 1년 동안 단 한 명도 기소하지 못했는지 설명해야 한다”며 “수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달 중순 전남경찰이 뒤늦게 항철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서도 유족은 못마땅해했다. 이날도 경찰청 앞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항의한 뒤 공항으로 돌아온 한 유가족은 “바람에 아내의 영정 사진 액자가 떨어져 깨지는 모습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며 “유가족을 보호하고 안아줘야 할 국가가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사고 조사는 항철위가 맡고 있다. 그러나 항철위가 국토교통부 산하 기구라는 점은 끊임없는 논란의 출발점이다. 국토부는 공항과 항공 정책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로, 구조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가족들은 “정책을 설계·관리한 부처가 조사까지 맡는 것은 이해당사자가 자기 자신을 조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항철위를 국무총리실 산하의 완전 독립 조사기구로 이관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런 가운데 항공철도사고조사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10일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항철위는 지난 4∼5일 공청회를 열어 기술적 사실관계와 증거를 설명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유가족들은 조사 결과 공청회에 강력 반발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 유가족은 “중간 발표라는 형식을 빌려 사고 원인과 책임을 모호하게 정리하고, 진상 규명을 서둘러 끝내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특히 블랙박스 분석, 엔진·로컬라이저 구조, 공항 주변 조류 활동 기록 등 핵심 자료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청회가 오히려 의혹을 덮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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