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신한국당은 그해 1월 당시 서른 살인 이찬진 한글과컴퓨터사 사장을 국회의원 후보로 영입한다. 이씨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한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한글 1.0’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을 선도하던 인물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이 잘 말해주듯 우리나라 정보기술 산업을 개척해 나갈 기린아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입당식에서 “국회의원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라고 밝힐 정도로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다.
신한국당 전국구 20번으로 출마한 이씨는 기존 1번이었던 이회창 총재가 15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자 1997년 11월 의원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본인 역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의원직을 사퇴하고 만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글과컴퓨터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이씨는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은 이어갔지만, 정치권에서는 완전히 잊힌 인물이 됐다.
정치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자질도 필요하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뒤 그 명성에 힘입어 정치권에 들어왔으나, 조용히 스러져 간 인물을 수없이 보아왔다. 정치는 블랙홀이다. 최고의 기업인, 외교관, 행정가, 경제학자 등 수많은 명망가가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정치권에 들어왔으나, 많은 이들이 결국 이력에 오점만 남기고 말았다. 대중적 인지도를 표로 치환하려는 정당의 탐욕과 자신의 명성이 정치에서도 통할 것이라 믿는 개인의 오만이 만날 때 비극은 시작된다.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하정우 청와대 AI 미래기획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하 전 수석은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네이버에서 AI 이노베이션센터장, AI 랩 소장 등을 지냈다. 학문·현장·실무 3박자를 겸비한 몇 안 되는 국가 인재로 평가받는다. 그에게는 국회의원보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 정책 설계자가 더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 전 수석의 출마를 보며, 30년 전 이찬진씨의 짧았던 정치 외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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