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옷 입기가 한층 복잡해졌다. 밤늦게까지 일정이 이어질 때는 겉옷을 챙겨야 했고, 한낮의 더위에 대비해 반소매 셔츠나 얇은 원단의 하의를 입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오래 이동하는 일이 잦은 나는 에어컨 바람과 출퇴근 시간의 찜통까지 계산에 넣어야 했다. 어느 날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에어컨 바람이 셌고, 어느 날은 객실 유리창이 부옇게 흐려질 정도로 더웠다. 사실상 어떤 옷을 골라 입든 날씨의 변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나는 고민 끝에 도톰한 재질의 바지와 반소매 니트셔츠를 골랐다. 그 위에는 새로 구입한 카디건을 입을 참이었다. 창문을 모두 열어두었는데도 강의실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웠다. 나는 한참 설명을 하다 이마와 등에 땀이 고이기 시작할 즈음 카디건을 벗어 옆에 내려두었다. 양 겨드랑이 축축하게 젖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더운 한낮이었다. 강의실에 드는 빛이 비스듬해지면서부터는 공기가 차게 식어 카디건을 입은 뒤 목 밑까지 단추를 채워야 했다.
번거로운 과정 끝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는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카디건을 벗고 보니 흰색 니트셔츠의 양쪽 겨드랑이가 새파랗게 얼룩져 있었던 것이다. 새 옷에서 이염이 되었던 모양으로 모르는 척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파랑이었다. 내가 오늘 몇 번이나 카디건을 벗었더라? 그날 만난 학생들 전부가 내 파란 겨드랑이를,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손을 휘저으며 말하고 있는 내 둔한 얼굴을 목격한 셈이었다. 에어컨이 너무 센 지하철 객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처럼 손발이 차가워졌다. 뒤늦게 밀려든 부끄러움이 분노로 이어져, 내 망가진 옷과 마음에 대해 어디에 어떻게 항의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때였다.
마침 연락을 해온 친구가 자초지종을 듣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전부 본 거야? 네 파란 겨드랑이를?” “응, 전부.”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뒤 시무룩해진 내가 답했다.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까.” “웃겼겠지, 뭐.” 친구가 가볍게 덧붙였다. “네가 진지하게 말할 때마다 웃겼겠지. 몰래 웃느라 재밌었을 거고, 덕분에 잠도 좀 깼겠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다시금 화가 난 내게 친구가 말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 변할 것도 없잖아. 단순하게 생각해. 네 파란 겨드랑이 때문에 누군가가 깔깔 웃었겠구나 하고 그냥 거기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해지진 않았지만 노력은 해볼 만했다. 나는 학창 시절 내게 주어졌던 ‘깔깔 웃는 시간’을 더듬어보았다. 학생들에게 상당히 인기 있었던 윤리 선생님의 셔츠에 항상 남아 있었던 집게 자국에 대해서. 빨래집게로 셔츠를 얼마나 호되게 집어 건조했는지 선생님의 양어깨는 늘 한 꼬집 솟아 있었다. 스승의 날 선물로 학생들이 ‘자국 안 남는 옷걸이’를 선물했을 때 그가 지었던 어리둥절한 표정도 떠올랐다. 셔츠 어깨는 곧 평평해졌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발견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어깨를 꼬집는 시늉을 하며 숨죽여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 정도의 일이었다. 한바탕 웃어넘기면 끝날, 적당히 난감한 일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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