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비용만 100만원 넘어” 토로
보상제도 있지만 상당기간 소요
정신질환 입원 이후 연락두절도
주거복지사마저 “선별계약 불가피”
일본선 운영전담 임대관리인 도입
“임대인이 관리 떠맡지 않게 해야” 하>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 매물이 줄면서 주거 취약계층이 집을 더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지만, 임대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경기 지역에서 다세대주택 세를 내주고 있다는 김모(53)씨는 독거 노인의 고독사 문제에 대해 “고독사하는 분들은 돈이 없거나 가족관계가 끊어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보증금도 안 남아 있는데, 청소비만으로도 10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고 했다.
◆“집 비워두면 손해”인데 수습엔 하세월
처리 비용이 지원되거나 보상 절차가 마련돼 있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울 중구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60대 여성 공인중개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동사무소에서 집 정리는 다 해주지만 석 달 걸렸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사고가 나서 LH나 S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보상을 받으려면 오랫동안 현장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그동안 세를 못 주니 임대인들은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5일 진보당 윤종오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 매입임대 주택에서 고독사가 발생한 건수는 2021년 7건, 2022년 22건, 2023년 30건, 2024년 61건, 지난해 62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서 60대 고독사는 1236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1169명, 70대 482명이었다.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부의 관리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김씨는 친한 임대인이 겪은 사례라며 “세입자가 정신질환이 있어 집에 있는 시멘트벽을 철제가 다 보일 정도로 긁어놓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연락이 두절됐다. 1년 정도를 기다리다가 결국 명도소송을 진행했다”고 했다. 김씨는 “소송하는 동안 집이 다 묶이니 (피해 구제 제도가 있어도) 애초부터 사회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아닌 경우에는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심재현씨는 “임차인에게 문제가 생겨도 강제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쫓아낼 수 없어 소송을 걸어야 하는데 보통 6개월∼1년이 걸린다”며 “그사이 월세가 밀리는 것뿐 아니라 소송에서 발생하는 금전적 손실과 행정적 피로는 오롯이 임대인의 몫”이라고 했다. 법이 임차인 보호 위주라 집주인들이 곤욕을 치르고 나면 다음 세입자를 받을 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존재하는 임차인 선별작업
‘임차인 면접제’는 사실상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춘식(67)씨는 “고령자, 독거노인, 정신질환 보유자가 오면 부동산 중개인 선에서 거절하게 된다”며 “집주인 항의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정부 위탁을 받아 취약계층의 입주를 돕고 있는 주거복지사들마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서울의 한 주거복지상담소 센터장으로 일하는 서모씨는 “이상한 사람을 소개해줬다고 찍히면 그 이후로는 상담소를 통한 계약은 받아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 면접제’에 대해서 “웃기는 일”이라고 단호히 반대했던 서씨이지만 “집을 찾으려면 주인이 민감해할 정보들은 애초에 공유한다고 봐야 한다”며 “또 다른 임차인이 편견을 받아 집을 못 구할까 봐 미연에 다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신질환을 가진 세입자가 여름에 열린 문으로 옆집에 들어가 대변을 보고 나온 일도 있었다고 했다. 서씨는 “사례자 관리를 하지만 역부족이다. 동네에 소문이 나면 새로 들어갈 집도 없어지고 상담소도 돕기가 어려워진다”고 부연했다.
세계일보가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 사무소 51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부동산 계약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 ‘고독사 등으로 인한 사고 대응 지원 제도’ 35.3%, ‘정기 방문 서비스 확대’ 29.4%, ‘공공 매입임대·전세임대 물량 확대’ 29.4% 등이 꼽혔다.
주택 임대차 과정에서 법률적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마련된 ‘임대차분쟁조정’ 제도도 마련돼 있지만, 해결은 어려웠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보증금 또는 주택 반환’ 관련 조정은 923건으로 가장 많았다. 임대인이 주택 반환을 요구하거나 보증금 일부를 주택 훼손 복구 비용으로 사용하는 등의 갈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관련 조정 중 임대인이 임차인을 상대로 조정을 신청한 경우도 93건이나 있었다. 하지만 조정 성립률은 36.7%로 3분의1 수준에 그쳤다.
◆“‘독거’ 임차인 증가, 갈등 방지 필요”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선 단순한 임대료 지원이 아닌 생태계 구축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윤재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노인 1인 가구가 늘면서 고독사 문제도 대두됐다”며 “주거 정책을 쓸 때 정부가 직접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하기보다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금 시장은 임대인 우위 시장이라 좋은 방은 더 없고, 전셋집은 씨가 말랐다”며 “임차인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실질적인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거 정책이 필요한데, 이러한 갈등은 개인의 영역에 남겨두니 임차인과 임대인이 서로 싸우는 꼴이 됐다”고 했다.
일본의 ‘임대관리인’ 제도처럼 월세 추심 같은 임대인 불만과 주택 유지·수선에 대한 임차인의 불만을 소통하고, 주택 임대 운영 전반을 전담하는 방식의 대안도 제시됐다. 김 교수는 “임대인이 임차인 관리를 떠맡지 않으니 반사적 효과로 독거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집 구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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