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배분 결정주체는 주주”
김정관 “생산적 재투자에 쓸 시기”
김영훈 “원청에만 이익 배분 문제”
정부 주도 논의 놓고 부처간 엇박자
일각 “사회적 재분배 필요성 있다”
“투자자 고려 국제기준 검토” 지적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잇따른 노동조합의 기업 이익 배분 요구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초과이익의 재투자’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글로벌 시장 주도권 및 기술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투자 여력 등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요 대기업 노조의 ‘영업이익 N% 성과급 제도화’ 요구나 사회적 재분배 논란 차단과 함께 기업의 초과이윤을 미래 기술 선점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해 써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계 권고와 산업부 장관의 호소
경총은 31일 회원사에 전달한 경영계 특별권고를 통해 노조의 영업이익 직접 배분 요구가 고유한 경영 판단이자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임을 명확히 했다. 최근 주요 대기업 노조가 성과급 산정 기준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앞서 SK하이닉스의 거액 성과급에 자극받은 삼성전자 노조가 ‘총파업 카드’로 사실상 ‘영업이익 연동형’ 보상 체계를 이끌어낸 후 자동차·조선·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영업익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너도나도 “성과급 기준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게 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경총은 기업 이익의 배분 기준을 제도화하는 것은 기업의 고유한 경영 판단에 해당해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노조법상 의무적 단체교섭 대상은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등 근로조건에 한정되는데, 이익 배분은 임금도 복지도 아니라는 논리다. 경총은 노조의 이익 배분 요구가 처음 제기된 시점부터 단체교섭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회원사들에 주문했다. 아울러 노조가 영업이익 등을 미리 나눠주도록 요구하는 건 자본시장 원칙과 국제 표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이익에는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의 자본 기여분이 포함된 만큼 주주 권리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총은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도 이익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에게 배분하기로 사전 약정하는 제도를 두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과급 제도 운영 원칙을 제시했다. 성과급은 단기 실적에 매몰되지 않고 중장기 투자계획과 기업 유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되, 근로자 생산성 향상과 기업 성과 창출을 유인하는 보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총은 단기적 현금 위주 보상보다 조건부 주식보상 등 회사와 근로자 이익을 중장기적으로 일치시키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 이익의 활용 방안은 노조와의 교섭이 아닌 경영 판단에 따라 결정·운영돼야 한다”며 “이번 권고를 토대로 회원사들이 원칙에 입각해 대응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김정관 장관이 삼성전자 초과이익에 대해 노조 성과금 배분보다 ‘생산적 재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지난 29일 페이스북에 “지금은 대한민국 대도약을 위한 투자 골든타임”이라며 “인공지능(AI) 호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대한민국의 산업 대도약의 성장 엔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고 불을 지피자 산업부 장관이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김영훈 장관은 27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노사 성과급 합의를 계기로 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한 사회적 재분배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겠다”면서 “오늘날 삼성전자의 성공은 해당 노사의 헌신적 노력에 더해 국가, 지역, 사회의 노력이 합쳐진 것”이라며 사회적 재분배 방안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정관 장관은 “AI 시대의 승부는 압도적인 속도와 규모에서 갈린다. 단 한 번의 투자 실기조차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우리 기업들을 회복하기 어려운 패자의 길로 내몰 수 있다”며 “기업 이익 활용의 최우선 원칙은 ‘생산적 재투자’여야 한다”고 김영훈 장관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상장기업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상법에 따라 주총에서 결정하면 되고, 주주의 판단에 따라 재투자가 필요하면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시장 원리”라고 말했다.
◆초과이익 공유 논란 이어질 듯
그럼에도 초과이익 배분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막대한 성과급을 받는 것과 관련해 정부 지원과 공공 인프라의 혜택을 본 기업들의 엄청난 이익을 해당 기업 임직원들의 주머니에만 몰아주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지 않아서다. 김영훈 장관도 “초과이익의 공유가 원청 정규직에만 한정되는 게 옳은 것인지, 원·하청 동반성장의 길은 없는 것인지가 저의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막대한 이익은 반도체 산업 발전에) 전력망 등 많은 국가 자원이 한곳에 쏠린 (덕도 본) 만큼 사회적 재투자 관점에서 하청 업체 및 노동자에게도 (초과이익이) 배분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정부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과이익 논의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급한 국민 배당금이나 기본소득 문제를 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어떤 차원인지 문제 제기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영자와 노조가 이 이슈로 각자 주장이 갈릴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 자유화 시대의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표준)”이라며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은 결정을 내리면 해외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만큼 해외 선진국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살피며 가이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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