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침은 지우고 美 참전만 비난
후손에게 올바른 전쟁사 가르쳐야
韓 위해 희생한 이들 꼭 기억하길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중국인도 무척 많다. 6·25전쟁 당시 망해가던 북한이 중공군 참전 때문에 가까스로 회생한 점을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서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기념관 전시물은 전쟁 기간 중국 지배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얼굴 사진을 북한 김일성, 소련(현 러시아) 이오시프 스탈린과 나란히 게시하며 ‘침략자’로 뚜렷이 규정했다. 중국인 방문자 중 마오를 국부(國父)로 여기는 이들이 보기엔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명백한 팩트(사실)인 것을 어떡하겠나.
2021년 중국에서 ‘창진후’(長津湖·장진호)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6·25전쟁 첫해인 1950년 11∼12월 북한 함경남도 장진군의 저수지 부근에서 미군과 중공군 간에 벌어진 전투가 배경이다. 인천 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하던 미군은 중공군의 비밀스러운 개입을 몰랐다. 장진호 일대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은 미군을 포위하고 기습을 가했다.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은 사상자가 얼마나 발생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밤이면 기온이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미군은 중공군뿐 아니라 혹한과도 싸워 이겨야 했다.
지난 14일은 미국 육군 창설 251주년 기념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에서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부터 시작해 미군이 참전한 주요 전쟁들을 죽 나열했다. 특히 6·25전쟁과 관련해 트럼프는 “우리 전사들은 한국의 얼어붙은(frozen) 산야에서 꿋꿋이 버텨냈다”고 치하했다. 맹추위 속에서도 기어이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동해안까지 행군해 흥남 철수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한 미군 장병들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영화 ‘창진후’는 장진호전투 당시 중공군 장병들의 영웅적 행위를 선전하는 데 급급해 6·25전쟁사를 왜곡했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대목을 쏙 빼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전쟁 당사자 중 하나인 남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 영화만 보면 마치 ‘제국주의 미국이 먼저 북한을 침공했고, 미국에 맞서 싸우는 북한 지원을 위해 중국도 참전했다’는 식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에 항거하고 조선(북한)을 도왔다는 뜻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무슨 ‘투명인간’ 취급하려는 속셈이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가 실시하려던 ‘6·25전쟁, 서로 다른 해석’이란 교육 프로그램이 물의를 빚고 결국 취소됐다. ‘압록강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란 부제가 붙은 문제의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에는 한국과 중국 어린이가 등장한다. 한국 어린이 머리 위로는 ‘6·25전쟁’, 중국 쪽엔 ‘항미원조’라고 각각 적힌 말풍선을 그려 넣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사업회는 ‘항미원조란 용어가 왜 잘못된 것인지 설명하려 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았다. 의도가 무엇이든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항미원조 표현이 널리 알려지는 데 일조한 결과만 되고 말았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는 6·25전쟁 전사자들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이 있다. 한국의 현충일이던 지난 6일 그곳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헌화 및 기도 행사가 열렸다. 장진호전투 참전용사로 올해 97세인 글렌 갈테리 목사는 “그 저수지(장진호 전투)에서 우리 군인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매장되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그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장진호전투 종료 후 흥남 철수작전에 돌입한 미군 선박 중에는 북한을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을 태운 배도 있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밟은 남한 땅이 바로 경남 거제다. 이를 기념해 얼마 전 거제에 ‘흥남철수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1950년 12월25일 흥남을 떠나 거제로 향하던 화물선 안에서 태어난 이경필(75)씨는 “공원이 안보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인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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