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투자자 결국 55조 손실
증권사만 엄청난 수수료 잔치
정책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
금융시장에선 투자 상품이 대규모 손실을 내면 ‘투자에 있어 최종 선택과 결과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 위험을 알고 투자했다면 과실뿐 아니라 손실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든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사태는 얘기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태를 주도한 건 정부인데 피해는 개인투자자들이 떠안고 재미는 증권사들이 봤다. 개인투자자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포함한 레버리지 ETF 누적 손실액이 55조원으로 추정(씨티은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들은 약 1200억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이 상품은 태생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금융당국은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이 상품 도입을 추진했다. 해외 주식으로 쏠리는 자금을 국내로 유인할 도구로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1월 말 금융위원회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추진 방침을 밝힌 뒤 4월21일 국무회의에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고, 5월27일 관련 상품 16종이 상장됐다. 불과 4개월 만에 법령 개정부터 상품 출시까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전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증권사들의 요청이 아닌 정부 주도로 이런 상품을 서둘러 출시했다는 게 가장 뼈 아프다”고 했다.
여기에 치명적인 정책적 오판까지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하루 등락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상품을 상장한 것은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두 종목은 코스피뿐 아니라 두 종목을 기초지수로 하는 다른 반도체 ETF와 각종 인덱스 펀드, 전 국민의 노후자산인 국민연금의 수익률까지 좌우하는 준지수 종목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게 아니라, 이미 몸통이 된 삼전닉스에 정부가 급가속 모터를 달아 증시 전체를 투기판으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이 상품 투자자들만 손실을 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삼전닉스 레버리지 ETF로 급격하게 돈이 몰리면서 매도 압력을 받은 다른 종목, 특히 코스닥 상장사들이 유탄을 맞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코스닥보다 변동성이 훨씬 더 크니 단기 모멘텀 투자자 입장에선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코스닥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다. 정부가 코스닥 투자자의 심리를 간과해 그나마 코스닥에 남아 있던 조금의 수요마저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투자자가 아니라 코스닥 투자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직접 사지도 않은 종목 때문에 수많은 투자자들이 계좌가 녹아내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정부가 뒤늦게 기본예탁금 3000만원 등 진입장벽을 높였지만, 법까지 뜯어고쳐 가며 사라고 하다가 이제 와서 위험하니 사지 말라는 꼴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개인투자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당초 목적인 환율 안정은 달성했을까. 단일종목 레버리지 출시 첫날인 5월27일 1506.7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7월2일 1555.8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1410원대까지 내려왔지만, 이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영향이 컸다.
결국 정책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믿고 따라온 투자자들의 피해만 키웠다. 그뿐인가. 외신으로부터 “한국이 투자 부적합 국가가 되고 있다”는 굴욕적인 경고까지 받았다.
민간 금융사가 고위험 상품을 만들었다면 감독당국은 이를 심사하고 투자자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필요하다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 목표를 위해 제도까지 바꿔가며 상품 출시를 밀어붙이면서 투자자들은 책임 주체이기 전에 섣부른 정책의 실험 대상이 됐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뒤늦게 증권사 배만 불렸다고 인정하며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나 후회된다”고 반성했다. 정부 스스로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그가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하는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금감원장이 막지 못한 사람이 이 사태의 책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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