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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쉬워지는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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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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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은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짜낸 메마른 문장’이라고 한다. 단 한 글자의 실수도, 오독(誤讀)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너무 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원고 소송대리인은 …이라는 판결을 요청하였고, 그 청구의 원인으로써 …이라고 진술하고, 피고의 답변에 대해서 …이라고 이야기하여, 그 입증으로써…’ 하는 식이다. 여기에 최고(催告·촉구), 해태(懈怠·제때 하지 않음), ‘불상(알 수 없는)’ 등 법률용어가 많이 들어간다. 잘 읽히지 않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특히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에겐 판결문의 벽이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사법부 최우선 현안으로 고질적인 재판 지연 해소를 꼽았다. 그래서 해법 중 하나로 어렵고 긴 판결문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판결문을 길고 자세하게 쓰는 관행 탓에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업무에 지친 판사들이 기존 판결문을 참고하면서 어려운 법률용어가 고쳐지지 않는다고 봐서다. 대법원은 올해 한발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쉽게 쓴 판결문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의 예규를 만들었다. ‘이해하기 쉬운(이지 리드·Easy-Read) 판결문’의 핵심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쓰는 것이다.

“피고인은 1년 동안 감옥에 가야 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치료받은 기간 만큼 감옥에 있는 기간을 줄여 줍니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2부는 최근 상습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씨 사건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쓰인 3쪽 분량 판결문을 따로 제공했다. 원래대로라면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피치료감호청구인을 치료감호에 처한다”고 적었겠지만, 김씨가 중증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쉽게 풀어쓴 것이다.

‘이지 리드’ 판결문의 주 대상은 김씨 같은 장애인이다. 발달·지적장애인뿐만 아니라 수어를 주로 써 국어 문해력이 떨어지기 쉬운 청각장애인도 포함된다. 인공지능(AI) 활용이 보편화한 것도 이 같은 판결문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판사들의 이런 수고와 배려가 확산하면 사회적 약자들의 사법 접근성과 사법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사법부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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