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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오래되고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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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학교를 오가며 강의하다 보면 강의실 형태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만 줄줄이 놓인 강의실이 뭐 그리 다를까 싶지만 크기와 구조, 기재와 출입문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이 거의 없다. 그에 따라 애로사항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의실 앞쪽에만 문이 하나 달린 경우 수업 도중 불쑥 들어서는 지각생에게 본의 아니게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다. 한가운데 교탁이 놓인 경우와 전선으로 연결된 전자 교탁이 좌측에 놓인 경우의 동선이 다르고, 스크린과 화이트보드의 쓰임도 다르다.

지금은 드물지만 일체형 책상 의자가 대부분이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자주 넘어지거나 기우뚱거렸다. 대형 창문이 있는 곳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블라인드가 덜걱거렸고, 45도만 열리는 작은 창문이 있는 강의실은 환기가 되지 않아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강의실 앞쪽 조명만 할로겐 등을 써서 노랗게 빛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넓은 강의실에 형광등 간격도 넓어 그림자가 깊게 지는 학교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에 화이트보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딱 한 곳, 아직 칠판을 쓰는 학교가 있었다. 모든 강의실에 칠판이 있는 건 아니고 문과대학 중에서도 일부만 그런 것 같았다. 언젠가 다른 건물로 배정받았을 때 화이트보드가 설치되어 있어 실망한 기억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강의실은 제법 큰 정사각형 모양으로 전면에 커다랗고 짙은 녹색 칠판이 놓여 있었다. 거치대에 놓인 색색의 분필과 분필지우개, 창틀에 놓인 지우개털이 기계 같은 것이 친숙하고 정겨웠다.

여러분 학교는 아직 분필을 쓰는 군요! 처음 칠판을 마주했을 때 나는 거의 호들갑을 피우며 분필을 이리저리 그어보았다. 고교 시절 이후로 거의 처음 만져보는 분필이었다. 나는 강의 도중 글자들을 괜히 칠판에 써넣거나 낙서하듯 몇 개의 선을 덧그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손에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밀도와 칠판에 닿는 면적에 따라 불규칙하게 달라지는 선의 굵기 같은 게 전부 다 매력적이었다. 나는 분필을 실컷 쓴 뒤 손에 묻은 분필가루가 내 셔츠나 바지에 남기는 흰 지문 자국까지 전부 다 좋아했다.

2학기가 시작되어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낯선 기재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전자펜이 부착되어 있는 이동식 전자칠판이었다. 나는 어쩐지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강의실에는 전자 교탁과 스크린이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어 전자칠판의 용도는 그야말로 칠판을 대체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분필과 지우개 등등이 소모품인 걸 생각하면 전자칠판이 편의와 실리면에서 우월하겠으나 어쩐지 나는 추억이 남아 있는 마지막 물건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새하얗고 깨끗한 화면에 그어지는 선들은 선명하고 또렷했다. 전자펜은 매끈하게 써졌지만 분필처럼 자유롭거나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어떤 각도로 쓰든 단정하고 일관된, 약속된 만큼의 선을 내보일 뿐이었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지루하기도 했다. 나는 슬그머니 분필칠판으로 옮겨가 판서를 이어갔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 좋은 걸 보니 나도 어엿한 늙크크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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