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피해자에 대한 모욕 논란
협업 파트너인 제니에도 영향
팬들과의 신뢰 지킬 조치 필요
최근 블랙핑크 제니가 아디다스와 협업해 운동화, 의류 등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시장의 뜨거운 반응도 잠시, 아디다스를 ‘제발 손절하라’는 팬들의 항변이 터져 나왔다. 발단은 아디다스가 절단 장애인을 위해 추진한 ‘싱글 슈’ 프로모션이었다. 2021년 이스라엘·가자 무력 충돌 당시 복무 중 다리를 잃은 전직 이스라엘 군인이 모델로 등장했고, 이에 팔레스타인 단체와 소비자들이 전쟁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라며 반발했다.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이들이 죽고 장애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스라엘 군인을 모델로 쓸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여파가 협업 파트너인 제니에게 미친 것이다.
한 짝 운동화를 파는 사업과 제니의 디자인 컬렉션은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제니가 문제의 광고에 등장한 것도, 제니의 컬렉션 광고에 어떤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글로벌 브랜드에서 촉발된 불똥이 협업 파트너에게 옮겨붙은 사례다. 제니와 소속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브랜드 광고가 평판 리스크에 노출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디다스는 불과 2년 전에도 팔레스타인계 모델 벨라 하디드를 SL72 운동화 광고에 기용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때는 거꾸로 이스라엘을 모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2023년 영국 기업 마크스앤드스펜서는 크리스마스 광고 속 불타는 장식물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연히 불매운동이 뒤따랐다. 국내에서도 2019년 무신사의 박종철 열사 모욕 논란, 최근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 유사한 사례다.
제니와 소속사 입장에선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기업과 셀럽의 브랜드 협업에 한정해 보면, 그간 문제를 일으킨 쪽은 셀럽인 경우가 많았다. 셀럽이 음주 운전을 하거나 학폭에 연루되고 부적절한 발언을 하면 기업이 광고를 내리고 계약을 해지하는 식이었다. 이번 경우는 반대다. 브랜드가 파문을 일으켜 보이콧에 직면했고, 그 기업과 손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제니가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교훈은 분명하다. 셀럽도 브랜드의 평판 리스크를 조심하고 관리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브랜드가 놓치고 있는 건 뭘까? 사람들이 어떤 말에 불편해하고, 어떤 이미지에 분노하는지, 무엇에 민감한지를 읽어내는 사회적 감각의 결핍이다. 기업과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고통받는 지점을 이해하는 ‘사회적 감수성’이다. 이는 기업이 던지는 말과 이미지가 지금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읽힐지를 미리 상상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만든 광고라도 전쟁과 인종, 젠더, 이념, 역사적 기억처럼 갈등이 집중된 지점과 연결되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광고 계약에는 셀럽이 물의를 일으켜 기업 이미지를 훼손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모럴 조항’이 포함됐다. 그 반대인 ‘역모럴 조항’이 포함되는 일도 있다. 기업이 불법행위나 윤리적 문제를 일으켜 셀럽의 평판이 훼손될 경우, 셀럽 역시 계약을 중단하거나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글로벌 협업을 계획하는 K아티스트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온라인 공간이 경제·사회 활동의 근간이 된 요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잘못 건드리는 순간 기업과 브랜드 그리고 이들과 협업하는 아티스트, 크리에이터까지 거센 저항과 불매운동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따른 매출 감소와 이미지 훼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2023년 미국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을 둘러싼 논란과 불매운동 이후, 그해 4분기 미국 판매량이 15% 이상 감소했다.
그렇다면 제니는 지금 당장 아디다스를 손절해야 할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제니가 이번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아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할 이유는 없다. 다만 논란에 대한 우려를 밝히고, 아디다스에 책임 있는 설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글로벌 팬들과 쌓아온 신뢰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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