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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섭의전쟁이야기] 자력으로 이길 수 없는 전쟁, 소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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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다. 상대의 주력을 섬멸하거나 수도를 점령해 항복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사의 수많은 결전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그런데 결전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으로 바뀐다. 바로 소모전이다. 여기서는 병력과 물자뿐 아니라 정치적 의지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1차대전이 대표적이다. 1914년 독일과 프랑스 모두 단기 결전을 기대했지만, 마른 전투 이후 서부전선은 참호전으로 굳어졌다. 승부가 병력과 물자를 얼마나 보충하며 오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리게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 등으로 연합국의 전쟁 수행 능력은 유지된 반면, 독일은 해상봉쇄와 물자 부족, 1918년 공세 실패와 국내 혼란이 겹치며 먼저 한계에 도달했다.

솜 전투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18파운더 포탄의 탄피.
솜 전투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18파운더 포탄의 탄피.

6·25전쟁도 처음에는 단기 결전으로 끝나는 듯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유엔군은 북진했지만 중국이 참전했다. 미국은 3차대전으로의 확전을 피하기 위해 목표와 수단을 제한했다. 1951년 중반 휴전회담이 시작된 뒤에는 상대에게 많은 출혈을 가함으로써 협상에서 압박하는 쪽으로 전쟁 양상이 바뀌었다. 고지전과 북한 전역에 대한 폭격도 이런 소모전의 일부였다.

베트남전쟁은 시작부터 소모전이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녔지만 중국의 개입을 우려해 북베트남에 대한 지상 침공을 배제했다. 대신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보충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많은 병력을 제거하면 언젠가는 전쟁을 포기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따라서 전쟁의 성과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보디카운트’, 즉 죽은 적의 숫자가 되었다.

문제는 상대도 소모전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대상이 달랐다.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장기전을 통해 미국의 시간과 전쟁 의지를 소모시키려 했다. 미군이 원하는 방식의 전면전은 가급적 피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장소와 시점을 선택하려 했다.

1968년 테트공세는 그 역설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전면 공세에 나선 공산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군사적 목표 달성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전쟁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렸다. 테트 직전까지 미 정부는 국민에게 전쟁이 잘 진행되고 있으며 끝이 보인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남베트남 전역이 공격받는 장면이 미국 가정에 전달되면서 정부의 설명과 눈앞의 현실 사이의 간극은 불신을 키웠다.

베트남전쟁에서 먼저 고갈된 것은 미국의 시간과 인내였다. 소모전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적을 죽였느냐보다 어느 쪽이 먼저 더 이상 싸울 수 없거나 싸우려 하지 않게 되느냐에서 갈린다. 지금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도 누가 무엇을 소모시키고, 어느 쪽이 그 비용을 더 오래 감당할 수 있느냐를 둘러싼 소모전이 되고 말았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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