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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조희대가 김태정처럼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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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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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1997년 ‘DJ 비자금’ 수사 유보
대선 후 ‘보상’받은 총장·중수부장
與, “曺 이례적 속도전” 비난해도
빠른 재판이 탄핵 빌미 될 순 없어

올해 1월 박순용 전 검찰총장(1999∼2001년 재임)이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에 관해 검색하던 중 흥미로운 자료가 눈에 띄었다. 김영삼(YS)정부 말기인 1997년 10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던 그가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나누는 사진이다. 당시 중수부의 최대 난제는 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대선을 앞두고 폭로한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김대중(DJ) 후보의 비자금 수수 의혹 처리였다. 12월 대선까진 겨우 2개월 남았다. DJ의 검찰 출석 장면 생중계만 이뤄져도 선거 결과가 어찌 될지, 아니 선거 자체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모를 판이었다. 대검 지휘부가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DJ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는 것이었다. 그해 10월21일 김태정 검찰총장이 직접 방송에 출연해 이를 발표했다.

당장 정치권에서 “검찰과 청와대 간에 사전교감이 있었느냐”, “DJ 측에도 미리 알렸느냐”, “명백한 검찰권 포기 아닌가” 등 온갖 의문을 제기했다. 총장을 대신해 박 중수부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기자들에게 “뭐라고 얘기하든 우리는 관심이 없다”며 “(중수부 검사들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총장의 수사 유보 방침을 일사불란하게 따를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듬해인 1998년 초 중수부는 ‘DJ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야당과 언론은 “DJ의 대통령 취임 이전에 ‘면죄부’를 주려는 요식 절차”라고 냉소했다. 아니나다를까, 취임식이 임박한 그해 2월23일 중수부는 DJ에게 최종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YS가 임명한 김 총장은 DJ로의 정권 교체 후에도 굳게 자리를 지켰다. 어디 이뿐인가. 1999년 5월 DJ는 아직 총장 2년 임기가 끝나지도 않은 그를 법무부 장관에 전격 발탁했다. 박 중수부장은 DJ정부 들어 서울지검장, 대구고검장을 거쳐 김 장관 후임으로 검찰총장이 됐다. 당시 모 신문은 인사 배경을 전하며 “중수부장 시절 ‘DJ 비자금 사건’을 무난히 처리함으로써 충성심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권력의 생리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요즘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혁신당이 작성한 탄핵 사유를 들여다보면 “대선후보에 대한 속도전 판결로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란 문구가 들어 있다.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5월1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이던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선고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그날 대법관들은 10(유죄) 대 2(무죄) 의견으로 앞서 무죄가 선고된 2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탄핵을 주장하는 이들은 판결 선고일부터 그해 6월3일 21대 대선 투표일까지 1개월가량 남은 점을 근거로 ‘속도전’이란 다분히 감정적인 표현을 쓴다. 이는 재판의 핵심 원칙 중 하나가 ‘신속성’이라는 점을 몰각한 억지주장일 뿐이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 사건의 상고심 판결은 항소심 선고 후 3개월 이내에 나와야 한다. 이 대통령 사건에 관한 서울고법의 2심 무죄 판결은 지난해 3월26일 내려졌다. 대법원은 선거법에 명시된 ‘3개월’ 규정을 준수했을 뿐이다. 대법원이 유죄 말고 무죄 취지로 판결했어도 그들이 ‘속도전’ 운운할까. 선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드니 엉뚱한 트집을 잡는 것이다. “재판 속도가 이례적으로 빨랐다”는 일각의 반발도 그렇다. 법률 위반이라면 모를까, 그저 ‘이례적’이라고 해서 탄핵 사유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다.

‘정치적 중립 위반’이란 논리는 1997년의 김 총장처럼 조 대법원장도 판결 선고를 대선 이후로 미뤘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런데 말이 정치적 중립이지 김 총장의 수사 유보 결정은 DJ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을 천하가 다 안다. 실제 김 총장도 대선 후 법무장관에 오르는 것으로 ‘보상’을 받지 않았나. 만약 조 대법원장이 재판 진행을 선거 뒤로 연기했다면 현 정부 들어 극진한 예우를 누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훗날 “사법부가 당선이 유력한 후보 편에 섬으로써 재판 공정성을 저해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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