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중국인이 대체 왜 이렇게 많아!”
한 중년 남성이 이렇게 소리치며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지난달 중순쯤, 한창 탄핵 집회가 열리는 광장에서 반중 정서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듣던 시기였다. 노약자석으로 향하는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격앙돼 있었다. 중국인이 많다는 사실 적시가 아니라 그게 문제라고 비난하는 의도가 뚜렷이 전달됐다.
중국 정부에 대한 반감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다르다. 지금 한국에서는 전자를 넘어 후자로 발전하는 양상이 보여 우려스럽다. 집회 현장에서는 “중국인 아니냐”는 추궁이 빗발치고, 출근길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눈앞에서 예고 없이 이런 적의(敵意)를 맞닥뜨리게 됐다. 중국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적 관점을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위험 수위가 감지된다.
이는 주한중국대사관의 반응에서도 포착된다. 올 초 계엄·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며 중국이 한국 정치에 개입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자 중국대사관은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정치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의 중요 공지를 냈다. 현지 정치 집회와 혼잡한 장소를 피하고,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며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라는 특별 권고였다.
하지만 한 달여 뒤 다이빙 주한중국대사는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각각 보수 진영 일각에서 반중 음모론을 부추기는 상황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 그사이 ‘중국 부정선거 개입설’이 정치권에서 튀어나오고,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가 주한 중국대사관 및 경찰서 난입을 시도했다가 체포·구속된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 안모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미국 중앙정보국(CIA) 블랙요원으로 칭했다. 모 매체의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 허위 보도가 나오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미국 입국 기록조차 없는 육군 병장 출신, 가짜 미군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신분을 위장한 이가 온라인에서 그럴듯한 썰 풀이를 했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믿어버린 일부 언론과 극우 여론이 합작하는 이런 사태는 현실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다. 팩트 체크 없이 가볍게 자판을 두드린 것의 대가는 그보다 훨씬 무겁다. 리더십 부재 상태인 한국에서 물밑 외교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외교관들로서는 특히 힘 빠지는 일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한·미 동맹과 한·중 파트너십이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윈윈(상생)할 수 있는 시대라고 강조해왔다. 조 장관이 “미국과 강력한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면서도 중국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양국 당국자들을 만날 때 발신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 나라가 없는 지금, 국익을 생각하면 이런 답이 나온다.
더구나 미국의 고립주의가 강해지는 때가 아닌가. 굳이 ‘중국이 싫다’는 감정을 마구 표출해서 한국에 좋을 것은 없다. 이미 민간에서는 중국인 유학생 등이 ‘혐한’ 정서를 안고 본국에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해외 인재 유치, 한국 외교무대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친한파를 양성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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