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사법리스크 키워 소극 경영 부추겨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짐승보다 우위에 서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지만,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기업을 활용하면서부터였다. 근대화 시기에 상공업을 발달시켜 경제적 경쟁 우위를 선점한 국가들은 모두 기업에 대한 법제적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17세기 경제강국 네덜란드의 주식회사제도 창안, 19·20세기에 영미법에서 발달하고 21세기에 독일도 입법화한 경영판단원칙을 들 수 있다.
상법은 경제발전을 위해 기업의 조직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지 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과 같이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거대 야당이 기업규제를 위한 상법개정안의 입법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구한말에 구미 열강들과는 반대로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후퇴하게 한 쇄국정책을 보는 듯하다.

최근 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은 이사가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충실의무를 부담하며,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주주 이익 보호의무 규정을 추가하고 있다. 현행 상법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직무상 주의의무나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 의무의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당명에 ‘민주’를 붙이면 민주적 정당이고 ‘국민’을 붙이면 국민적 정당으로 착시하게 하는 것처럼, 다수의 소액주주를 위한 개정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만 내는 것에 불과하고 적극적 기업경영을 가로막을 뿐이다.
주주는 기업가 주주·투자자 주주·대주주·소액주주·기관투자자·헤지펀드 등 주식보유의 목적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러므로 이사의 행위 기준이 되는 ‘총주주의 이익’이란 주주의 개별적 이익의 총합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단체적 이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주평등원칙에 따라 이사는 어느 개별 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행위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체 주주의 단체적 이익을 파악하는 방법은 무엇이 회사의 이익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회사의 이익은 모든 주식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전체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의 이익은 총주주의 이익과 같은 것으로 봄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각국의 회사법 및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다. 결국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란 상법개정안은 현행 상법의 ‘회사를 위하여’와 다른 내용이 아님에도 마치 주주를 더 위하는 상법개정인 것처럼 착시효과만 내는 것일 뿐이다. 개별 주주의 구체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등의 관련 개별 규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구체적 규정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법개정안의 더욱 큰 문제점은 개별 주주로서는 이사의 행위로 자신의 개별 이익이 침해된 것만으로도 이사의 의무위반이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거나 이사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나 배임죄의 형사고발을 남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영미법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업무상배임죄가 있고 과실과의 구분이 어려운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으므로, 경영실패로 회사의 손해가 발생하면 이사는 거의 예외 없이 배임죄의 수사대상도 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나 독일은 경영판단원칙을 도입하여 이사의 경영판단을 보호함으로써 우수한 경영인재를 유치하고 기술혁신을 위한 적극적 경영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경영판단원칙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경영판단원칙이란 경영실패 시 이사의 의무위반 즉 임무위배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차적 심사대상을 충분한 정보수집 등의 절차적 사항, 회사의 최대이익 추구 등의 주관적 사항으로 한정하고 경영판단의 내용심사를 자제함으로써 이사의 경영판단을 보호하는 원칙이다.
이러한 경영판단원칙을 입법화하지는 않고 남소가능성이나 규제를 높이는 상법개정안의 입법을 강행한다면 이사는 사법리스크를 의식하여 소극적 경영에 안주할 것이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前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