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의 ‘아파트’ 노래 깜짝 등장
보편적 공감대 형성 높이 평가
K팝을 국가 소유물 취급 안 돼
7월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1776년 7월4일 영국 왕과 의회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해 전쟁을 벌인 미국의 13개주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 각지에서 축제가 벌어지는데 하이라이트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 ‘내셔널 몰’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규모의 불꽃놀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불꽃놀이를 하지만 워싱턴 것이 특히 성대하기로 유명하다. 올해 독립기념일엔 자신의 정치적 승부수였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서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백악관 발코니에서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특유의 ‘주먹춤’을 추며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워낙 인파가 몰리는 곳이어서 망설여졌지만 워싱턴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또 언제 보겠나 싶어 지난 4일(현지시간) 내셔널 몰로 향했다. 오후 9시가 넘자 약 17분간의 불꽃놀이가 세대를 아우르는 여러 미국적인, 혹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들을 배경으로 성대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10분 정도 지나 하이라이트에 접어들 무렵 익숙한 “아파트, 아파트” 가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 인기를 얻은 로제의 ‘아파트’가 워싱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황금시간대에,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 주제가였던 리 그린우드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요즘은 세계 어디를 가도 K팝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가장 미국적인 공간인 워싱턴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서 K팝이 흘러나오는 것은 꽤 새롭게 느껴졌다. 주변의 미국인들이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며 성조기를 흔드는 것도 재미있었다.

어쩌다 ‘아파트’가 트럼프 행정부의 첫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등장하게 된 건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불꽃놀이를 즐긴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첫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 등장한 K팝 ‘아파트’는 내게는 뜻밖에도 미국 다양성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작사·작곡을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로제와 함께 부른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는 트럼프 캠프 관계자가 대선 당시 ‘쓰레기섬’이라 불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푸에르토리코계이자 필리핀계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거기다 한국의 오래된 대중가요를 재해석해 국적과 장르를 넘는 보편적 감수성을 얻은 K팝 ‘아파트’야말로 원래 미국의 가치 중 하나인 다양성을 잘 구현하고 있는 노래이니 말이다.
한류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될수록 K팝의 세계적 인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먼저 K팝의 인기는 분명 한국의 공공외교에 큰 자산이지만 이를 국가의 소유물이나 부속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좋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해야지 대놓고 수단으로 삼거나 심지어 동원하는 것은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2년여 전 2023년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국빈 방미 당시 로제의 소속 그룹이기도 한 블랙핑크의 공연이 내부에서 추진되다가 언론에 알려진 뒤 취소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독립기념일 축제에도 등장할 정도로 세계화된 K팝을 국가의 소유물처럼 행사 동원 용도로 쓰려는 사고는 구시대적이다. 새로운 정부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이 곧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싶은 사건이다.
K팝은 국경과 장르를 넘는 보편적 감수성의 단계에 이른 것 같다.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때로 놓아 줄 필요가 있다. 대형 자본이 한국식 아이돌 문화에 미국 팝 요소를 섞은 기획상품이라고 폄훼할 필요도 없다. ‘아파트’가 인기를 얻은 뒤 인터넷에서 노래의 많은 부분이 영어 가사이고 미국 가수와 협업했다는 점 때문에 K팝이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을 본 적이 있다. 오히려 한국 문화를 재해석해 세계적인 감성으로 녹여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이 한류라는 독특한 문화적 자산을 오래, 더 보편적 형태로 갖기 위해 생각해 볼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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