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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오늘 점심은 프랭크 오하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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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16 22:58:23 수정 : 2025-09-16 2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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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다. 오늘은 무얼 먹고 어디로 산책할까? 며칠 전에 산 프랭크 오하라(1926∼1966)의 ‘점심 시집’(미행)을 들고 집을 나서려다, 1962년에 일레인 드 쿠닝이 그린 프랭크 오하라의 초상화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이 초상화엔 눈, 코, 입이 없다. 그래서 자꾸 눈길이 더 가고, 보면 볼수록 훨씬 더 프랭크 오하라답고, 더더 자유롭고 솔직해 보인다. 나도 누군가가 나를 저렇게 그려주었으면…. 그러나 진실로 서로를 믿고 경애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누구든 섣불리 저렇게 그리지는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저 둘의 친밀한 우정이 정말 부럽고, 그들이 속해 있던 그 당시의 ‘뉴욕파(New York School)’ 그룹이 한층 더 맛깔나 보인다.

1950년대, 프랭크 오하라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일하면서 점심시간만 되면 그 주변을 산책하며 자신의 일상을 시로 썼다고 한다. 발길 가는 대로 시공을 초월해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지그재그로 옮겨 다니며 쓴 이 ‘점심 시집’은 읽어 내려갈수록 마치 내가 그와 함께 있는 것처럼 다정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묘하게 치열하게 자유로운 기분에 빠져들게 만드는 배짱 두둑한 시집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아는, 좋아하는, 추앙하고, 혐오하고, 분노하는 문학, 영화, 공연, 그림과 음악, 친구들을 시대를 초월해 모두 불러내어 자신의 일상 위에서 실시간 즉흥 재즈 연주를 하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자신이 좋아했던 잭슨 폴록식 액션 페인팅처럼. 이런 그를 향해 그의 친구였던 시인 존 애쉬베리는 그의 시 쓰기는 무작정, 무작위의 추상이 아니라 관찰에서 파생된 ‘자생 초현실주의’라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자생 초현실주의! 분명 그의 시는 초현실주의나 다다, 비트와는 다르다. 그의 시에는 음악처럼, 재즈처럼 언어의 계율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한 시인의 깊은 연민의 물줄기와 사랑의 권유가 담겨 있다. 외로움이든 슬픔이든 소외든 고통이든 그건 여전히 세상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며, 자, 나와 함께 세상으로 나가서 살자는. 자생적 자기 애가주의가 실려 있다.

이기주의자는 정말 싫지만 자기 애가(愛歌, 哀歌)주의자는 좋다. 괜찮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아마도 사람들이 그의 시들을 좋아하는 큰 이유도 이 점이 아닐까?

오늘 나는 그의 ‘점심 시집’과 함께 맛나게 점심을 먹고, 그 시집 속 ‘그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서’의 끝부분처럼 “파파야 주스 한 잔을 들고”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그는 내게 말했다. “내 심장은 내 주머니에/ 있고, 그건 피에르 르베르디의 ‘시집’이다”라고.

아, 나도 저렇게 시를 쓰고 싶다. 좀 더 솔직하게, 일상을 무한대로 넓고 깊게 파헤치며 꿈같은 변위를 창조해 내는, 상상력이 없다면 그 자유롭고 통쾌한 파동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그런 시!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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