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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최고의 환율 진정제는 경제 체질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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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18 23:16:49 수정 : 2025-11-18 23: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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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연기금 해외 투자 확대에 달러 유출
성장 잠재력 높이고 투자 환경 개선 시급

코로나가 막 지나던 시기, 외환시장 담당 공무원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먼저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외화 자산을 꾸준히 늘려 왔으나 외화 자산이 늘어난 것이 코로나 기간에 어려운 외환시장 수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덧붙여 “환율은 언젠가 1500원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당시 환율이 1100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다소 과감한 전망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했고, 인공지능(AI) 기반 신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오히려 강화되는 국면이었다. 경제성장률이 차이가 나면 성장률이 높은 쪽이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고,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진다면 원화 약세는 필연적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그러나 이렇게 장기적이었던 예측과 달리 원·달러 환율이 1500원 가까이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다. 이는 구조적 요인과 단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격차, 금리 차 확대처럼 이전부터 지적되던 구조적 경로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와 기업들의 적극적 해외 투자 확대가 맞물리고 있다. 개인, 연기금, 대기업 모두 해외 자산 비중을 늘리면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해외로 유출되는 달러가 더 빠르게 증가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매년 200억달러 투자안에 따라 향후 지속적으로 달러가 유출될 것으로 우려되어 환율은 더 올라가고 있는 양상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의 고환율이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처럼 국가 경제 자체가 어려웠던 상황과는 다르다. 한국은 올해 들어서도 경상수지 흑자를 역사상 최고수준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 또한 매우 안정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외환이 급격히 이탈하는 위기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가 누적된 결과로 나타난 고환율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충격형 고환율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위기가 아니라고 현재의 환율 수준이 경제에 부담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 제조업 중심의 성장 구조에서는 원화 약세가 좋은 시그널이었다.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며 경기 개선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컸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고도화된 오늘날에는 환율 상승이 수출을 늘리는 메커니즘이 크게 약해졌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정교해지고 기업들이 직면한 경쟁 환경이 변화하면서 환율이 예전만큼 수출 물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고환율이 가져오는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뚜렷하다. 국제 유가가 오르지 않아도 환율 상승만으로 원화 기준 유가는 높아지고, 밀가루·설탕 등 생활 필수 품목의 원자재 가격도 함께 뛰게 된다. 또 고환율은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처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내년도 사업 계획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원·달러 환율 자체의 상승은 특정 시점의 경제 여건을 반영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섣불리 긍·부정을 논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동인에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성장력이 약해지면 금리도 낮아지고, 채권시장에서 해외로 자금이 쏠리게 된다. 더욱이 기업 투자 수익률이 낮아지면 여유 자금은 자연스레 해외 주식시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성장률 저하 때문에 환율이 올라가는 상방 압력이 세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환율은 한국 경제의 거울과도 같다. 지금의 고환율 흐름은 외환시장의 단기 변동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질을 되돌아보라는 신호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투자 환경을 개선해 국내에서도 충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환율 안정 대책이다. 고환율이 주는 부담을 단기적 충격으로만 인식하기보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성장 기반을 마련할 때 비로소 환율 리스크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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