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의 권리와 기여를 재평가해야
비트코인은 물리적인 형태가 전혀 없는 가상의 디지털 자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의심했고, 초기 지지자들은 가상자산의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디지털 황금’에 비유했다. 마치 금광에서 금을 캐내는 것처럼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계산 행위를 “채굴한다”고 설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설명은 강력했다. 이제 사람들은 1비트코인이 1억원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문제는 부정확한 묘사의 부작용이다. 일례로 많은 ‘코인 사기범’들이 “비트코인처럼 이 코인도 초기에 채굴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사기를 벌였다. ‘금광을 먼저 발견하면 부자가 된다’는 단순화된 설명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 또한 비트코인처럼 ‘21세기의 석유’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강력하고 쉬운 설명은 이후 데이터 정책의 방향을 개인정보보호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석유회사가 유전을 소유한 국가나 기업에 대가를 지급하고 채굴권을 획득하는 것처럼, 데이터를 사용하는 21세기의 테크놀로지 기업들도 개인의 소유인 데이터를 이용하려면 대가를 지급하는 게 온당하다는 생각이 마치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데이터는 유전에서 채굴하는 석유라기보다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에 더 가깝다. 우리는 데이터를 소유한 듯 착각하지만, 실제로 데이터는 어디에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활동에 따라 생산된다. 우리가 내비게이션에 이동 장소를 입력하고, 단풍이 든 가을산에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식의 행위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해 공산품을 완성하는 것처럼 생산활동에 더 가깝다. 데이터는 석유처럼 어딘가 고여 있는 걸 캐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활동이 컨베이어벨트 위의 재료처럼 올려지면서 하나로 조립돼 의미를 갖게 된다.
데이터를 석유 같은 자원이라고 볼 때 정부와 사용자의 대응은 이 자원이 특정인의 손에 독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에 집중된다. 개인정보보호라거나, 사생활 침해 방지, 공공데이터 개방 등이 대표적인 데이터 정책이 된 이유다.
하지만 데이터를 공산품이라고 보면 접근이 달라진다. 기업들은 이미 우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데이터) 생산에 활용한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 회사가 ‘좋아요’를 많이 받는 알고리듬을 바꾸면 우리는 거기에 따라 회사가 원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생산하는 식이다.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행위의 설계자가 기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의 도입은 데이터 공장의 풍경을 또 한 번 바꾸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사용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정교하게 다듬는다. 사용자들은 AI와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취향과 생각, 문체까지 정교하게 맞춤형으로 가공한 데이터를 기업에 헌납하는 셈이다. 기업이 간접적으로 설계하던 데이터 생산 공정이 이젠 AI로 실시간 최적화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데이터를 21세기의 석유로 보면서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했다. 데이터를 공산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새로운 과제가 생겨난다. 공장의 노동 환경을 망치는 건 공장주의 탐욕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과 휴식시간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 데이터 공장의 근로 환경도 마찬가지 아닐까. 기업의 탐욕은 통제하고 데이터를 생산하는 사용자의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할 때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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