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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탈모가 생존 문제라는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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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08 23:07:08 수정 : 2026-01-08 23:07:07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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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외신 기자와 K뷰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가격 대비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한국 뷰티산업은 단숨에 전세계를 사로잡았는데,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외모 강박 사회’를 사는 한국인들의 불안이 브랜드 간 엄청난 경쟁을 붙인 결과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받은 질문은 “한국에서 최근 남성들도 외모 가꾸기에 열심인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가”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여성들이 받는 외모 관리에 대한 압박감에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는 현실을 짚어주는 한편, 외부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이 가는 이 방향이 자연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그러던 중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탈모 치료약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주문했다는 것을 들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탈모는) 증상이 있거나 생명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 아니다. 미용적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도 건보 급여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부정적 답변을 내놨는데, 이에 대통령은 “예전에는 미용 문제였지만 이제는 생존 문제”라고 반박했다.

머리숱이 없다는 것을 죽고 사는 문제로 여기는 한국의 현실을 주요 외신은 놀라움을 담아 전했고, 국내에서도 한동안 논쟁이 이어졌다. “탈모가 생존을 좌우할 문제가 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정치”라는 비판 여론에서 보듯 정치적 책무를 내던지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문을 확인해 보면 이 대통령은 탈모가 생존 문제라고 단언한 것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이를 생존 문제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국민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니, 정책 수요가 되지 못할 이유가 있냐는 것으로 읽힌다. 탈모가 정말 생존 문제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현실은 문제가 없는지, 그걸 바꾸기 위해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과정은 생략됐다. 이를 건너뛰고 정책화 단계로 가 버리니 포퓰리즘 논란을 낳는다.

이때 진실의 무게와 중요성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인식론에 기반한 ‘고통의 인정 경쟁’만이 남는다. 누가 더 효과적으로 플랫폼을 장악해 나의 고통을 더 크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느냐가 핵심이 된다. 대체로 여기에 더 유리한 것은 이미 권력과 자원을 가진 쪽, 지배적인 규범에 동조하는 쪽이다. 결과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는 균열을 내기 어려워진다.

복지부는 지난달 대통령이 주문한 탈모약 지원 관련해 청년 건강바우처 지급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결국 이 사안이 단순 복지 정책을 넘어 20∼30대 남성 표심을 겨냥한 정치적 기동이었음을 보여준다.

대머리에 대한 낙인 때문에 연애시장과 노동시장에서 청년 남성이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을 ‘생존 문제’로 치환해 정치·제도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회에 희망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이로 인한 낙담은, 성별 기반 폭력으로 실제 목숨을 위협받는 일상을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이나 다른 유전 질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공론장까지 닿지 못하는 현실과 대비될 때 극대화된다. 애초에 탈모가 생존 문제라는 명제부터 정말 참인지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을 뭉갠 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관련 정책 대응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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