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TV를 보던 도중 눈과 귀를 의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과 관련,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라며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는 말이 나왔을 때였다. 이 대통령이 “군별로 따로 떼어서 군을 육성하고, 아주 장기간 특정 군종이 군대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가끔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절단내고 난 다음 아무런 책임을 안 지면 되겠나”라며 “통합하면 이런 가능성이 좀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발언한 대목에선 ‘저런 발언을 해도 되나’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육군사관학교는 창립 이래 한국 사회에 뚜렷한 명암을 드리워왔다. 경제성장 시기엔 안보와 경제·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반면 육사 출신들이 주도한 5·16과 12·12 쿠데타는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민주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장교양성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던 육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극소수의 정치군인들이 만든 계엄은 그들의 출신학교인 육사로 불똥이 튀게 했다. 국방부는 사관학교 통합 추진이 육사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대통령 발언의 파장에 가려지는 모양새다.
군인의 자긍심을 깨버린 계엄 주동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역사적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관학교 체계를 통째로 흔드는 방식이라면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창군 이래 쿠데타 등에 관여하지 않았던 해·공군까지 포함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도 개혁 논의가 과오에 대한 단죄의 수단이 아닌 2050년대 한국군 능력 향상과 한반도 안보 증진의 도구로 쓰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제도 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군 수뇌부가 2050년대 이후 한국군 장교단의 비전과 미래 장교상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대학 진학 과정에서 졸업 후 취업 등 20∼30년에 걸친 인생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하게 된다. 군인의 길을 선택했을 때 20∼30년간 복무한 자신의 모습,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사관학교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군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 사관학교 교육 체계를 바꿔도 군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군인의 길을 선택할 청년 인재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장교 급여 인상이나 주거환경 개선 등을 앞세운다. 물질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질적 뒷받침과 함께 군복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선에서 묵묵히 복무하는 직업군인들이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정년까지 복무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첨단 기술로 구성된 통합 국군사관학교를 만들어도 청소년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장기 복무 대신 사회 진출을 선택하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위한 우선순위 설정과 치열한 고민, 군 복무 환경 및 사회적 지위 수준에 대한 고찰이 더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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