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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전두환이 없앤 ‘연좌제’, 누가 되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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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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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의 증조부 행적 논란 황당
봉건적 낙인찍기 공화국서도 횡행
李 대통령은 “쿠데타, 육사 연대책임”
反헌정·법치·민주적 보복 시대착오

지인은 대학생 시절이던 이승만 정권 말기 정부의 북진통일론에 반대해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는 학생운동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7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도피 1년, 감옥 7년, 20대 청춘을 옭아매던 쇠사슬은 박정희 정권 때 출소 후에도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녔다. 지인이 생전에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 있다. “전두환이 나쁜 인간이지만 그래도 하나 잘한 일이 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연좌제(連坐制)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연좌제는 특정인의 범죄 책임을 가족·친족 등에게도 묻는 봉건적인 집단책임, 연대처벌제도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명목상 폐지됐으나 공공연하게 남아있었다. 6·25 전쟁을 거쳐 1960, 70년대 우리 사회 쟁점 중 하나였다. 지인이 시국 사범이라는 전과가 자녀에게 미칠 화(禍)를 걱정하던 차에 제5공화국 헌법에서 연좌제 폐지가 명문화됐다. 이제 보통 사람은 관심도 없겠지만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5공 헌법 제12조 3항, 6공 헌법 제13조 3항)는 조항이 그것이다.

김청중 논설위원
김청중 논설위원

조선시대 형률(刑律)은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준용했다. 모반대역죄(謀反大逆罪)의 경우 공모만 했어도 정범과 종범을 구분하지 않고 능지처참했다. 여기에 연좌제에 따라 아버지나 16세 이상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했다. 15세 이하의 아들, 어머니, 딸, 처첩, 조부, 손자, 형제자매, 아들의 처첩 등은 공신의 노비가 되고, 재산은 몰수됐다. 본인 일이라 상상해보라, 얼마나 소름 돋는 잔인한 형벌인지.

연구(조윤선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에 따르면 연좌제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강화된다. 부모나 남편을 죽이거나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강상죄(綱常罪)에 대해서도 대명률과 달리 연좌제가 적용됐다. 특히 사람뿐만 아니라 지역도 연대처벌했다. 강상죄에 대해 출생지 등의 지방행정 등급을 격하하는 강읍호(降邑號)와 책임자를 파면하는 파수령(罷守令)이 법조문화됐다. 강읍호·파수령은 모반대역죄엔 조문에도 없었지만 실행됐다. 역향(逆鄕)이란 낙인을 찍어 보복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5공의 연좌제 폐지는 전두환의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6·25 전쟁, 독재 정권 시절 친족 행위로 인해 진학, 취업, 승진, 출국 등 여러 방면에서 자행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대한민국 민권 신장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 연좌제 폐지다.

갑자기 하영이라는 배우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두고 논란이다. ‘친일단체에 있었으니 친일파다’, ‘친일 행적이 확인되지 않으니 무리다’라고 갑론을박이다. 이 나라엔 아직도 연좌제가 있나. 증조부 행적이 배우 개인 활동과 무슨 상관인가. 몸은 민주공화국에 있으면서 머리로는 봉건왕조를 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문제는 연좌제적 사고가 공적(公的) 영역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해괴한 ‘육사의 쿠데타 연대책임론’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사관학교 추진과 관련해 역대 쿠데타를 거론하며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고 충격적 발언을 했다. 국가안보 관점을 상실한 육사 폐지임을 자인한 것도 충격이지만 봉건시대, 권위주의 시대에나 볼 수 있던 연좌제 부활이라니 더 충격이다. 진심이면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실수였다면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2014년 10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당시 일본 오사카 시장이 극우 인사와 논쟁하며 일갈했다. “법률 위반자가 있으면, 그 특정 개인을 고발하라. ‘조센진은 (일본에서) 나가라’ 등 그런 시답지 않은 말 마라. 민족, 국적을 엮어 평가하는 비열한 발언을 하지 마라.” 개별 사안을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 중상모략하는 졸렬한 행태는 극단주의의 전형적 수법이다. 육사 연대책임론은 시대에 동떨어진 봉건적 사고이자 우리가 신봉하는 헌정, 법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범법자가 있으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개인을 처벌하고 육사를 싸잡아 보복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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