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트럭을 몰고 해발 4500m가 넘는 티베트 커커시리 청장도로를 달리는 남자. 보이는 건 거대한 설산과 광활한 벌판과 눈발 섞인 세찬 바람 소리뿐, 가도 가도 키 큰 나무 한 그루 나타나지 않는 척박하고 황량한 그 고원지대를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크게 틀어놓고 그 노래에 의지해 달리는 남자. 거친 가죽 재킷에 짙은 갈색 선글라스를 쓰고, 며칠 세수도 못 한 듯 머리도 수염도 덥수룩한 남자. 오늘은 우연히 창밖 벌판에 나타난 새의 멋진 비행에 한눈팔다 그만 지나가던 양 한 마리를 트럭으로 치고 말았네.
오, 이런, 오늘은 정말 일진이 사나운 날이군. 그래도 자신의 실수로 죽은 양을 길가에 버려두고 갈 수 없어 자신의 차에 죽은 양을 태우고 가는 남자. 그러다 눈보라 휘날리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한 캄파 티베트인 청년을 태우게 되는 남자.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진파’라는 청년은 사나로 가는 중이며, 그곳에 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이러 간단다. 캄파 티베트인은 원한이 있으면 꼭 되갚아 주어야 하고, 원한이 있음에도 복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치라고 생각하는 전통에 따라.
남자는 그 청년을 사나에서 내려주고 자신의 직업적인 볼일을 다 끝내고는 절로 찾아가 스님에게 자신 때문에 죽은 가엾은 양의 명복을 빌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곤 그 양을 독수리 떼들에게 풍장시킨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 청년이 도플갱어처럼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사나로 그 청년을 찾아 나선다. 수소문 끝에 그 청년은 자신의 원수에게도 어린 자식이 딸려 있는 걸 보고는 차마 그 원수를 죽이지 못하고 울면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 복수를 못 했구먼. 다행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남자는 트럭 바퀴가 고장 나 그걸 고치고는 잠시 쉬면서 잠이 드는데 꿈속에서 자신이 그 청년이 되어 원수를 갚아준다. 티베트 속담에 “꿈을 말해주면 아마 잊어버릴 것이나, 꿈에 끌어들이면 같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남자는 그 청년의 복수를 꿈에서 자신이 대신 해주고는 늘 끼고 다니던 선글라스도 벗어버리고, 동명이인이었던 두 ‘진파’를 동명일인으로 만들어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진파라는 이름답게(티베트어로 ‘진파’는 보시, 베풂, 혹은 관대함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이 남자는 영화감독 데뷔 이후 줄곧 티베트 영화를 고집해 온 페마 체덴의 여섯 번째 영화 ‘진파’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제75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영화답게 각본이 정말 잘 짜여 있고, 느리고 단순한 로드무비인데도 박진감 있게 재미있고 생각거리를 많이 주는 뛰어난 영화다. 주인공인 트럭 기사 ‘진파’는 실제 이름도 진파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압권은 엔딩 크레딧 때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다. 마치 ‘진파’의 속편 같은 무게감을 안겨준다. 이 영화를 하루 중에 두 번이나 재미나게 보게 해준 페마 체덴 감독께 감사함을 전한다. 오, 솔레 미오!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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