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피해자 지원은 역사적 과제이자 책무입니다.”
‘충청북도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상식 충북도의원은 “충북에는 10명의 원폭 피해자가 있는데 대부분 80대 이상 고령”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원폭 피해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평안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생활지원수당 지급 등 실질적인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며 “조례 제정으로 원폭 피해자의 남은 삶에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라며 원폭 피해자에 대한 지역사회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충북도의회는 지난달 24일 본회의에서 이 조례안을 의결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당시 방사선에 노출된 도내 피해자들의 생활안정 지원 근거를 마련한다는 뜻에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원폭 피해자들은 지금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고 호소한다. 해방 이후 원폭 피해 생존자 수만명이 귀국했으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또 이들 생존자의 자녀인 원폭 피해 2세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분단과 강제동원, 전후 정세의 희생자인 셈이다. 전쟁의 폭력과 핵무기 사용 피해, 돌아온 고국의 외면 속에서 방치된 삶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원폭 피해자들은 광복 이후 분단과 전쟁, 급속한 산업화가 이어지며 국가의 공식 기억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다. 1990년대 들어서며 실태조사가 이뤄졌고, 2016년 5월19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특별법은 피해자를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당사자, 당시 태아였던 사람으로 한정했다. 원폭 피해자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조례는 경기와 부산, 경남 등지에서 제정했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 것은 다행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실효성 문제는 여전하다. 특별법에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원폭 2세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또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실질적인 지원 등이 이뤄지도록 조례안 개정을 논의 중이다.
2025년 8월. 8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광복’의 그늘에 80년의 ‘침묵’으로 불리는 원폭 피해 그림자가 드리운다. 식민지 출신으로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국가의 침묵 등 그 생채기는 80년의 긴 세월에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이들의 고통과 희생은 우리 기억 속 어디쯤 자리할까? 그들이 고국 국토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음에도 그 기억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이란 등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와중에 ‘핵시설’, ‘핵무기’ 등이 거론된다.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고 민간인을 향한 폭격은 여전하다.
평화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80년 전 전쟁은 끝났지만 그 고통을 기억하고 더는 반복하지 않게 할 우리의 책임은 여전히 무겁다. 그 책임의 증인인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과 희망이 담긴 기록에 이제는 우리가 답해야 할 때가 아닌지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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