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과 어깨에 걸린 잔스포츠 백팩을 앞으로 돌려 세면대 위에 올린 뒤, 가방 안에 있던 휴대용 치약과 칫솔을 꺼낸다. 적당량의 치약을 칫솔에 묻힌 뒤 이를 닦기 시작한다. 위로, 아래로, 가로로, 세로로…. 생각도 함께 닦는다.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무엇을 기사로 써야 할까, 작가는 왜 나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을까…. 문득 무심히 거울 앞에 낯익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곧 그날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누구에게 선물하시나요?” 꽃집 여주인은 두 손으로 부지런히 꽃을 포장하면서 물었다. 시선은 꽃다발에 고정하고 있어 무심한 듯 하기도 했지만, 목소리에는 작은 흥분 같은 감정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회사 동료들이 상을 받게 돼서요.” 나도 모르게 조금 높은 톤의 대답이 터져나왔고, 꽃다발을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내내 꽃집 주인의 말이 뒤통수에서 맴돌았다. “그렇죠? 얼굴 표정을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
프레스센터로 가는 버스에 오르던 그날 아침, 뭔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새로운 공기가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프레스센터 19층 수상식장에 들어서자, 지난 대선 당시 매니페스토취재팀장으로 고생한 조병욱씨가 연단에서 한창 소회와 취재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객석에 조용히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은 어느새 어떤 기사에 닿기도 했고, 기사와 얽힌 사건으로 옮겨 붙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길이 식장 앞 플래카드 안의 ‘제7회’라는 것에 꽂혔을 때, 문득 생각은 또 다른 그날로 마음을 이끌고 갔다….
“정책 중심의 선거보도를 장려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 직후 정책 선거를 위한 중앙선관위의 워크숍에서, 나는 선거보도상 제정을 제안했다. “선거보도 관련 상을 신설해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생각은 다른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이 거의 끝나갈 때에야 비로소 떠올랐다. 선거보도상이 7회째구나.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8년 전 그날 선관위에 이 상의 제정을 제안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회사 동료들이 이 상을 받다니…. 제17대 총선이 끝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시작된 매니페스토와의 오랜 분투도, 기쁨과 좌절도….
수상을 축하하러 꽃다발을 들고 일어서는 순간, 어떤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 인사가 실린 신문을 펼쳐든 그날 아침의 해방감도 함께. 난, 최고의 선택을 한 거야. 이제 난 문장을 찾으러 갈 거니까…. 동료들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연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뒤를 젊은 나도 걷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가려진 진실을 위해, 그리고 소중한 한 줄의 문장을 위해….
이때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지하철역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실없이 웃고 있는 나를 힐끔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하는 뜨악한 표정이 분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를 닦은 뒤 물로 입을 헹군다. 사무실로 서둘러 들어가야 한다. 또 다른 문장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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