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맹은 산업·경제가 기반
상생 없인 양국은 균열 불가피
장기적 내구력 강화 해법 시급
오늘날 동맹 관계는 과거처럼 군사력과 외교적 신뢰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맺고 있는 동맹 관계는 최근 산업과 경제기반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고 있다. 그러한 점에 있어 최근 한국 제조업의 약화와 산업 공동화 현상은 단순한 경제 이슈가 아니라 동맹의 구조적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은 지난 바이든 행정부 시기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지원법 등을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동맹 간 협력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외국 기업의 현지화를 촉진하는 정책이다. 예컨대 전기차 세액 공제, 반도체 보조금 등은 북미 지역 생산을 기준으로 한정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전적으로 미국의 압박 때문만은 아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 그리고 기업의 글로벌 분산 생산 전략, 그리고 녹록지 않은 국내 경영환경 등도 함께 작용했다. 즉 정책적 압력과 시장의 유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러나 그 결과가 한국 경제에 남긴 공백은 작지 않다. 수백개 협력업체, 부품업체, 기술 인력의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제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자 연쇄적으로 일자리와 기술력, 지역경제까지 함께 약화되고 있으며 한국의 산업 벨트가 서서히 비워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홀딩스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줄줄이 미국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공동화는 한·미동맹 내부의 새로운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보와 기술협력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나 산업 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산업을 안보의 핵심요소로 간주하며 자국 내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동안 한국은 동맹 협력의 이름으로 자국의 기술과 자본 일부를 이전하고 있다. 결국 안보 측면에서 협력은 강화되겠지만 산업 측면에서의 비대칭은 심화될 수 있다. 미국이 ‘산업을 통한 안보’를 추구하는 동안 한국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산업을 내주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데, 안보 동맹의 강화가 산업 협력의 불균형으로 전이되도록 방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단기간에 피할 수 없으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단기적 보조금 지급이나 규제 완화 조치로는 부족하다. 반미정서 활용이나 보호무역 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먼저 산업정책을 경제부처의 영역에만 두지 말고 국가안보 전략과의 연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급망, 기술, 인력의 불안정 수급은 군사안보 못지않은 국가안보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 방산 정비 등 고부가 사업 분야 중심의 국내 산업 생태계 조정도 필요할 것이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동시에 군산, 창원과 같은 기존 산업 벨트 및 지역거점 도시 중심의 산업혁신 클러스터 육성도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미 협력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맹 협력은 군사협력만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미국과의 경제협력은 과거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미국의 산업 부흥이 동맹국의 산업 공동화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양국 모두의 이익도 줄어든다. 동맹 간 산업의 상생을 도외시한 안보협력은 동맹의 균열로 이어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양국 모두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 동맹 간 비대칭적 산업 균형은 결국 국민적 피로와 지역적 분열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현재의 산업 공동화 수준은 미국 중서부 러스트벨트에 준하는 상황에 아직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한미 양국 모두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제안하고 조율하는 주체적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 한·미동맹의 과제가 될 것이며, 이것이 동맹의 장기적인 내구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